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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한국과 벗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판자촌 예수정일우 신부

 

청계천 판자촌에서 거리낌 없이 어울려 살며

박정희 정권 반대하다 강제추방 위기도

문규현 신부 진짜 그리스도를 봤지요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지난 62일 선종한 천주교 예수회 정일우 신부(79, 미국이름 존 데일리)는 한국 천주교의 양심적 신부들이 가장 존경하는 빛과 같은 존재다. 판자촌에서 산 빈민사목의 대부이자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 지도신부이기도 했다.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 신부는 18살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고인은 25살이던 19609월부터 3년간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한 뒤 사제서품을 받고 1966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고인은 예수회 부수련장, 수련장으로 영성신학을 지도했지만 복음을 입으로만 전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들어, 1973년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1969년 홀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할 만큼 약자들과 함께해 왔다. 그로 인해 몇 번이나 강제추방될뻔 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그는 정든 한국과 벗들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았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에 눌러앉게 된 고인은 갈 곳 없이 정부의 철거정책에 내몰리는 철거민들과 함께 청계천, 양평동, 상계동 등에서 늘 함께 했다. 고인은 빈민촌에서 빈민, 부랑아, 걸인들과 함께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 훗날 한국의 사제들이 빈민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한 삶의 거울이었다.

 

제정구 선생의 부인 신명자 복음자리 이사장은 제 남편 제정구도 개구쟁이었지만, 정 신부님은 더 개구쟁이었다언젠가는 육교에서 50원씩에 파는 병아리 10마리를 사갖고 와 그 좁은 방에서 병아리 10마리와 함께 살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 복음자리 공동체 식구들은 평상시엔 하느님의 존재를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정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 모임을 할 때는 정말 성령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강론이 없어도 뭔가 움직이는 느낌, 어디서 오는 힘인지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공동체 식구들은 아무런 가식 없이 청년들과 술을 함께 마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대해주는 정 신부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대하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내공이라는 점을 깨닫고, 그를 우리 곁에 온 예수처럼 반겼다.

 

양평동 판자촌에 살다가 철거되자 갈 곳 없는 빈민 170세대와 함께 경기 시흥 소래면 신천리로 옮겨간 정 신부는 그곳에서 고인이 된 제정구씨 등과 함께 복음자리 공동체를 꾸려 20여명과 함께 먹고 자고 살았다.

 

정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믿으라고 말하는 법도 없었고, 신부인 체 하지도 않았고, 모처럼 미사 때 미사복을 입은 그에게 누군가 이제야 신부 같네요라고 말하면 이 때라도 신부인 척해야지라고 점잔을 뺐다고 알려져 있다.

 

정 신부는 70살 생일을 앞두고 영적 수련을 하며 무려 63일간 지속한 단식으로 그는 죽음 직전에 이르러 그 동안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왔다.

 

정 신부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빈소엔 사제들과 노동자, 빈민 등이 몰려들었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들의 큰 스승, 대선배 정일우 신부님. 신부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진짜 그리스도를 봤지요. 약자와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 끝없는 비움과 겸손. 이 나라 민중의 벗이요 아버지요, 후배 사제들에게 조용히 큰 가르침을 주시던 신부님을 애통함 속에 이제 보내드립니다. 더 없는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

 

.............................................................

 

정일우 신부님에 대한 5가지 기억

예수회 정만영 신부

    

<하나>

97년이나 98년일 게다. 정일우 신부님은 당시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예수회 누룩공동체에 계셨다. 수사로 있을 당시 그곳을 방문해서 며칠을 머무르곤 했다.

젊은 예수회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주 신부님을 찾아왔다. 공동체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신부님은 자주 막걸리에 취해 얼굴이 불그스레했다. 그러니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만, 매년 이익을 내기는커녕 적자인 게 당연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부님은  사람 농사를 지으셨던 것 같다.

 

한번은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릴 때 포도주가 떨어져 막걸리를 사용하셨다.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이 한국에 태어나셨더라면 막걸리로 분명 미사를 드렸을 것이며, 아일랜드면 위스키로, 중국에서는 빼갈, 일본이면 사케였을 것이라고 하셨다.

 

마포 공덕동에 계실 때는, 신부님께서는 이미 동네 빵집에 누룩 안든 빵을 특별주문해서 성체로 사용하시기도 하셨던 터라,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었다, 많이.

  그래도그래도예수님의 핀데라는 말을 되뇌이며 신부님의 주장을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뭐 일종의 서양 땡중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은 신부님의 그 생각이나 행위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나는 과연 막걸리로 미사를 드릴 수 있을까?’하면 못하겠다.

신부님의 그 큰 마음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

괴산의 낡은 집 마루턱에 담배를 태우시며 걸터앉아 계시면서 그 특유한 억양으로 내게 물으셨다.

만영아~ 사람이 무엇이요?”

뜬 구름 잡는 질문이었다.

나는 신부님을 웃으며 쳐다보면서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사실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게 무슨 질문이야. 물을 것을 물어야지.’하는 마음이었다.

 

신부님은 그런 나를 다 아셨던 것인지. 니코틴으로 변색된 누런 이를 들어내 보이시며 실실 웃으셨다. 사실 이빨뿐만 아니라 콧수염도 담배 연기에 누렇게 물들어 있기도 했다.

 

오늘 아침 신부님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신부님의 그때 그 웃으시는 얼굴과 함께 울컥하며 젠장 아직도 모르겠네. 당신은 사람이 무엇인지 알고 물었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난다.

 

<>

한달 전 즈음 병원에 계시는 신부님을 방문했다. 당시에도 신부님은 한번 위독한 시기를 넘기셨다.

신부님 저 왔어요하는 말에라고 대답하셨다.

신부님을 이리저리 보며 혼자 말을 하다 신부님 기도해 드릴까요?”라는 말에 , 기도해주세요하셨다.

두 눈을 꼭 감은 신부님의 손을 붙잡고 속으로 하느님 정일우 신부님의 이 고통을 끝내주시고 당신 곁으로 어서 데려가세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10년의 투병 기간 중 2년여 간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도를 한 밤에 몹시 괴롭고 후회를 많이 했다. 몹쓸 기도를 한 내 자신이 미웠다.

병실을 막 나오면서 신부님, 이강서 신부님 보고 싶어요?”라고 물었더니예 보고 싶어요라는 말에 이강서 신부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이 대화가 또렷한 의식을 가진 신부님과 내가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

신부님의 별명은 능구이시다. 사람을 마음속 같이 바라보시는 눈빛이나 생각하고 하시는 말씀들을 듣고 있으면 신부님 마음 안에 능구렁이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만 마리가 들어 앉아있는 듯 했다. 해서 언젠가부터 신부님을 능구렁이를 줄여 능구라고 부르곤 했다.

 

이런 별명을 들을 때마다 신부님은 예의 그 징그러우면서도 해맑고 능구렁이 같은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누런 콧수염과 니코틴 낀 이빨을 다 들어내 보이면서 말이다. 그 별명을 신부님도 싫어하지 않으신 듯했다.

 

<다섯>

신부님을 알고 지낸 이후 한번도심지어 병원에 계실 때조차 몇 번이나 작별인사를 했으면서도 신부님 사랑해요라는 이 말을 못했다.

동기 신부가 능구 사랑해요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귀에 대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순간 나도 할 걸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신부님은 내 마음을 아실 게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았어도. 신부님이 누구신가?‘능구이지 않은가

만영아~ 사람이 무엇이요?”라는 질문에 이젠 답할 수 있겠다.

신부님은 능구요, 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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