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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 부끄럽습니다.

엉터리 영어, 일본말 찌꺼기, 엉망진창 우리말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한국에서는 10월을 문화의 달이라고 합니다. 개천절, 한글날, 문화의 날 등이 있고, 가을 날씨가 좋아서 문화행사가 많이 열리는 달이지요. 올해는 추석 연휴가 끼어서 한층 즐겁겠네요.

하지만, 10월은 세종대왕님께 죄송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이 엄청나게 망가져가고 있는데, 글쟁이 주제에 아무 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판이니 도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핵 위기로 어수선한 판에 말까지 망가져가도 있으니

그렇게 망가진 말은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한인사회에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상륙합니다. 그러니 문제지요.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풍조입니다.

지금 우리말이 변화하는 속도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릅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시시각각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고, 번져나가고 있지요. 일본말의 찌꺼기 정리도 아직 못했는데, 영어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니 도무지 정신이 없습니다. 세종대왕님께서 기절초풍하실 지경이지요.

 

엉터리 영어 천국

바야흐로 지금 한국에서는 영어가 거의 공용어처럼 별 거부감 없이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정식 공용어는 아닙니다. 그러니 더 문제죠.

나라, 정부, 언론, 교육기관,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영어 사용에 일로매진한 결과, 조기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은 물론 시골 할머니들 입에서도 영어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옵니다. 길거리의 간판도, 상품 이름도, 연예인 예명도 온통 영어 범벅입니다. 지금 한국 도시의 번화가 풍경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엉터리도 많을 수밖에 없지요. 곰탕을 Bear Soup, 칼국수를 Knife Noodle이라고 번역하는 것쯤은 애교라 치고, 심각한 엉터리도 상당히 많은 모양입니다.

영어 교재 저술가로 유명한 조화유 선생은 신문 고정칼럼을 통해 이런 엉터리 영어를 열심히 고발하고 있는데, 고쳐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아 매우 답답하신 모양입니다.

조화유 선생에 따르면, 요새 흔히 쓰이는 코리아 패싱, TF, 레드라인, 스쿨존, 셀카, SNS, 리베이트, 모럴 헤저드, 박세리 키즈, 세레머니, 원샷이런 낱말들이 미국에서는 잘 안 쓰는 엉터리 영어거나 자연스럽지 않은 영어라는 겁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이런 어색한 영어를 쓰는 건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모범을 보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요새 걸핏하면 “TF를 설치하여운운하는데, 이 말은 Task Force 약자이지요. 그냥 우리말로 전담반이나 전담부서라고 하면 될 걸 왜 영어로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조화유 선생은 답답해합니다. 영어이름을 붙이면 일을 더 잘하려나? 아니면 영어로 해야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SNS라는 단어도 미국에서는 Sorry Not Sorry(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말로 읽힐 가능성이 더 크다는군요. 그냥 소셜 미디어라고 하면 될 걸, 그것 참!

조화유 선생이 지적하는 엉터리 영어는 그밖에도 많습니다. 가령, 만두를 dumpling이라 쓰지 않고 Man Doo라고 써놓으면 우리에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이것을 미국인들은맨 두우라고 읽을 것이고 그 뜻은 인분(人糞)이기 때문이다. 특히 곽씨 성을 가진 의사는 절대 Dr. Kwak이라 쓰면 안 된다, 미국인들은 이것을닥터 쿠액이라 발음하며 그 뜻은 돌팔이 의사(quack)이기 때문이다 등등

엉터리 영어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영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테레비, 매스콤, 아파트, 도라꾸, 제무씨, 라이방, 난닝구, 빤쯔, 프로같은 일본식 줄임영어, 엉터리 영어가 그대로 우리에게 들어왔고, 아직까지도 그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일본사람들의 말 줄이기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유별나지요. 퍼스널 컴퓨터를 파스콤, 맥도널드 햄버거를 마구도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그런 습관이 우리에게도 전염되어서 핸드폰 같은 기발한(?) 단어를 발명한 겁니다. 핸드폰이라니? 세상에 발로 받는 전화도 있나요? 요새는 좀 고쳐서 휴대폰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죠. 휴대전화라고 하면 될 걸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단어뿐만 아니라 말투나 문장까지 영어식으로 푹 젖어 있다고 언어학자들은 걱정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아래 문장에서 앞의 것은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영어식 표현이고, 괄호 안에 적은 것은 자연스러운 우리말입니다. 어느 쪽이 익숙하고 매끈한지 비교해보시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또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사실관계를 확인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정보가 없다.)

분석이 정밀하게 진행돼야 (정밀하게 분석해야)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꾸준히 노력해서)

시끄럽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시끄러워서 문제다.)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해 (가장 많이 올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많이(오래) 걸린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중이 크다.)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쇼부를 본다, 곤조가 있다, 무데뽀로 밀고 간다, 간지가 좋다.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일본말입니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습관적으로 쓰이는 일본말 잔재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부 유명 지식인들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평소에 쓰던 말을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경우도 있고, 그게 일본말인지조차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보입니다.

한국말은 일본말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있는데, 일본말은 한국말에 10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반드시 고쳐야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래야 일본을 꾸짖을 수 있지요! 그런 뜻에서 우리말에 스며 있는 일본어 찌꺼기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간지= 느낌, 맵시 쇼부= 승부 곤조= 근성 쿠사리= 꾸중 땡깡= 생떼, 투정 겐세이= 참견 구라= 거짓말 노가다= 막노동 무데뽀= 막무가내 유도리= 융통성 찌라시= 광고전단지 가오= 얼굴, 체면 단도리= 준비, 채비 이빠이= 가득히 만땅= 가득 와리깡= 각자 돈내기 앗사리= 깨끗하게, 말끔하게 왔다리 갔다리= 왔다 갔다 하기 기스= 상처, 흠집

다대기= 다진 양념 사라= 접시 쯔키다시= 곁들이 안주 오뎅= 어묵 소바= 메밀국수 와사비= 고추냉이 야끼만두= 군만두 아나고회= 장어회 와리바시= 나무젓가락 요지= 이쑤시개 히야시= 차게 한 것

곤색= 진남색, 감청색 소라색= 하늘색 삐까삐까= 번쩍번쩍 소데나시= 민소매 땡땡이무늬= 물방울무늬 레자= 인조가죽

사바사바= 편법으로 넘기기 오야붕= 우두머리 시다= 보조원, 조수 가부시키= 돈 나눠 내기 똔똔= 득실 없는 본전 야미= 암거래, 뒷거래 나가리= 유찰, 허사

요이, = 준비하고 시작 하코방= 판자집 다라이= 대야 후까시= 허세 시아게= 끝손질, 마무리

 

단어뿐만 아니라 일본식 문장이나 말투도 문제입니다. 법조계나 전문업종에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에도 일본어 투가 많이 남아 있지요. 가장 심각한 것은 교과서에 실린 일본어 투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문교부가 교과서에서 그런 일본어 투 쫓아내기에 나섰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일본어 투 표현인 ~에 대()하여, ~로 인()하여, ~로 인한, ~의 경우, ~() 같은 것을 우리말 표현으로 다듬겠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예절이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는 문장은인터넷 예절이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로 고치고,‘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라는 문장은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삶의 자세를 생각해 봅시다로 다듬는 것이죠.

‘~로 인()하여는 문장에서 아예 빼거나 조사로 수정해도 뜻을 전달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홍수 등으로 인하여 물길이 바뀔 때라는 문장은홍수 등으로 물길이 바뀔 때로 고쳐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의 경우, ~로 인한이라는 표현도 바로잡아, 부족할 경우에부족할 때, 태풍으로 인한 피해태풍의 피해로 고쳐 쓰면 됩니다.

 

일본어는 아니지만 일본식의 낱말이 그대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견(路肩)= 갓길 소사(小使)= 사환 할인(割引)= 덜이 외출(外出)= 나들이 의미(意味)= 소감(所感)= 느낀 바.

 

엉망진창 우리말

망가지는 우리말의 현실은 말로 다 적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괴상한 높임말, 청소년들의 신조어, 줄임말, 비속어 등등

여기 아메리카노 커피 나오셨구요. 거스름돈이세요. 시럽은 옆에 있으시구요.”한국에서는 어딜 가든 매장에서 이런 괴상한 높임말들이 넘쳐납니다. 손님이 왕이기 때문이죠.

청소년들이 쓰는 신조어는 변화무쌍합니다. 줄임말, 소리 나는 대로 적기, 외국어 합성, 초성 사용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줄임말이나, 초성 사용이 범람하는 카카오톡 등 SNS(소셜네트웍 서비스)의 문자습관이 생활언어로 표현되기도 하는 양상이랍니다.

이런 줄임말은 성인들의문자질에서도 일반화 된지 오래랍니다. 몇 가지 예를 드는 것으로 글을 줄이겠습니다.

ㅋㅋ, ㅎㅎ, ㅂㄷㅂㄷ(부들부들), ㅊㅋㅊㅋ(축하축하), ㄴㄴ(노노), ㅇㅇ(응응),

어쩔(어쩌라고요),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 프사(프로필 사진), 쓰봉(쓰레기봉투), 엘베(엘리베이터),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낫닝겐(영어 Not+인간의 일본어 닌겐 합성. 인간이 아니라 신과 같다), 노잼(부정어 NO와 재미를 합성. 재미없다는 뜻)

 

이 같은 언어파괴 현상은 세대 간의 사이를 더 벌어지게 합니다. 한 조사 결과노잼이라는 신조어를 알고 있는 60대 이상은 3.7%, 50대는 16.7%에 불과했고, 10대 청소년 부모 세대인 40대도 뜻을 안다(41.5%)는 답이 절반도 안됐다고 합니다. 심각한 문제죠.

이런 소셜 미디어 줄임말은 우리말에서만 극성인 것이 아니고 물론 영어에도 넘쳐납니다. 영국 교육부는 최근 청소년 자녀와 부모의 불통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학부모들을 위한 소셜 미디어 사전을 모은 사이트를 공개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은 휴대전화의 대중화에 따라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청소년이나 젊은 층이 만들어내는 신조어의 질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신조어는 욕설, 폄하, 비하 관련 단어, 비속어,‘헬조선같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단어 사용례가 대부분이고, 줄임말 역시 부정적인 용어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청소년들이 20어절에 한 번꼴로 비속어나 은어 등을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랍니다.

아이구, 미국에 사는 덕에 그런 꼴 안 봐서 좋네라고 웃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어에도 아리송한 줄임말이 넘쳐나는 판이니, 부모님들이 공부해야 할 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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