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느 날, 채널아일랜드비치에서 - 조옥동 시인. 수필가-

by Valley_News posted Jun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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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에서 온 친구가족과 벤츄라 시티로 가는 도중 옥스나드 하구를 찾은 것은 해양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채널아일랜드를 여행할 목적이었다. 요새미트, 데스밸리, 새코야 킹스캐년 등 어느 곳보다 가주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나카파, 샌 후안, 산타크루즈 등 5개의 섬으로 구성된 채널아일랜드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어 방문객의 편의시설보다는 자연보호에 신경을 쓰고 있는 진정한 자연국립공원이다.

   미서부 남가주 서쪽 해안에 있는 이 국립공원은 L.A.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 반 드라이브하여 옥스나드 하구에서 선착선을 타고 떠난다. 남가주의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내륙과는 격리된 하늘과 바람과 바다가 보호하는 작은 세상이다. 이 섬들에서만 생육하는 동물과 식물은 물론 바다 속의 해양식물과 어패류가 수십 종이 발견되어 이를 보호하고 연구하는 시설이 되어있다. 이곳은 겨울비로 촉촉해진 땅에 색다른 야생화가 펼치는 장관을 덤으로 보려면 봄철 여행이 좋다고 한다. 

   해변에 이르는 길은 딸기축제로 유명한 농장을 지난다. 옥스나드 딸기 축제가 끝날 무렵, 빨갛게 매달렸던 딸기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너른 들판이 오직 초록입새로 덮인 밭들을 바라보며 맡은 소임을 다 끝마친 딸기밭의 후회 없는 침묵의 행군과 마주친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결실을 울긋불긋 맺고 있는 딸기 철 농장의 모습을 상기하며 생성의 부침(浮沈)을 시야에서 확인했다. 모처럼의 뱃길을 생각하며 선착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

   5월 중순 채널아일랜드비치는 한적했다. 섬을 왕래하는 배가 부두에 매어 뜰 수 없다는 안내판을 읽고 실망했으나 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급한 일행의 시야에는 멀리 바다위로 안개로 가려져 섬들은 거무스레하게 윤곽만 나타났다. 섬으로 가는 배가 뜨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쉬움을 떨어내며 채널아일랜드 비치 현판을 발견하고 차를 내렸다. 비교적 붐비지 않는 채널아일랜드비치 모래사장은 차례로 밀려오는 파도소리만이 살아 있는 풍경을 채색하고 있었다. 해안에 닿아 차츰 낮아진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해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호흡소리를 높은 음계로 살아나게 한다. 순간 표백된 웃음은 깨끗이 사라지다.

   이미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발자국들, 모래사장은 그들을 지우지 않고 흔적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내 발을 한 발자국 안에 조심스레 밀어 넣어 본다. 안성맞춤 모래구두를 신고 행여 망가질 가 한동안 서있다. 엷은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의 웃음이 푸른 바다 수면위에 내려와 주름 지어 출렁이는데 멀리 떠있는 섬들은 깨어나지 않을 잠속에 누운 듯 평화롭다. 모처럼 넓은 시공간에 자연으로 흡수되어 사유도 느낌도 없이 존재를 잊는다. 나라는 존재를 잃을 때 모든 매임에서 자유하고 평화롭다.

   순간은 순간으로 이어져 역사를 만들고 변화하는 것, 모래알 하나를 집어 들고 얘기를 듣는다. 손에서 없는 듯, 반짝거린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수억 또 수억의 모래알중의 하나와 수억의 인생 중에서 하필 나와의 만남은 무엇을 말하는가? 혹은 우연이라 한다. 예정된 필연이라 말을 바꾼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많은 스토리를 지어내고 슬픔과 기쁨은 줄기나 뿌리로 자라며 스토리의 내용을 펼친다. 굵고 가늘게, 길고 짧게 허용된 생명을 사는 동안 추하고 또는 아름답게 꽃과 입새를 피우며 열매를 맺고 씨앗을 얻는다. 자비를 입은 것은 대를 이어 생존하고 계속 지구상에 존재한다. 용서와 죄업의 척도를 가진 이는 과연 누구일가? 만드는 이의 능력과 지혜에 따라 등장할 인물과 사물과 환경은 펼쳐지고 내용은 더욱 풍성해 질것이다.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가? 악역을 피하고 선한 역할을 소원할 것이다. 사유의 한계에 묶여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종교적 존재다. 생각하는 동안 내 몸이 기우뚱 하며 잠시 빌려 신은 모래구두가 망가졌다.

    바로 옆자리 매끈한 모래위에 새 발자국을 만들었다. 모래는 아무 저항도 없이 발바닥의 압력을 받아들인다. 손바닥으로 누르면 손자국을 만들고 마른 모래들은 말없이 밟히고 눌렸다. 모래사장에 곧 사라질 발자국들 내 흔적을 남기며 배회하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조약돌을 또한 닳고 닳은 조가비를 발견한다. 풍화작용 즉 기온이 오르고 내리며 바람과 물과 부딪쳐 커다란 바위는 조약돌이 되고 끝에는 모래가 되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품었던 진주조개는 가슴과 입술까지 닳아서 결국은 생명이 없는 조그만 조가비로 남게 되기까지 얼마나 길고 긴 세월이었을까? 비교하면 우리 인생은 짧고 짧다. 부끄러운 일상의 내 모래성을,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멀리 날리다. 

   내 상상의 날개는 갈매기 소리에 얹혀 높은 파도를 건너 그제도 안개에 싸인 채널아일랜드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수십km 앞에 놓인 목적지를 여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뒤돌아 설 때도 연속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채널아일랜드의 바위를 씻고 쓸어낸 자그만 돌멩이와 모래들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밀어 나르고 있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조화를 이루며 동화(同化)되는 삶을 이룰 때 순리(順理)에 이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