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야기 -김희란-

by Valley_News posted Dec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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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한국 뉴스에서 본 가슴 아픈 사연.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가는 카페리 선박 CCTV에 걸음이 불편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배 난간 쪽으로 걸어간다. 할머니의 “천천히 천천히"라는 힘겨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CCTV 사각지대 어둠 속으로 모든 게 사라진다.

   차후에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0년간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병간호에 지친 할아버지가 아내와의 제주도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배에서 동반자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행 동안, 같이 먹고 자고 구경하면서 가졌을 법한 생각과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할머니의 ‘천천히'라는 말은, 헝클어진 머릿속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승에서의 마지막 끈이었을까? 생각할수록 눈물겹다. 

   최근 메디케어 가입 문제로 방문한 어느 노부부의 가정. 

   두 분의 인상이 참 온화했다. 조용히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와 미소 띤 얼굴의 할머니. 

인적사항 질문에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를 갸우뚱하면서 쳐다봤더니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사람, 예쁜치매에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아, 그러시군요"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노년의 인격과 품위가 배어있는 분들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지고 온 간식을 앞에 두고 감사 기도드리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저 평화와 감사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예쁜치매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감당할 수 있는 건강과 인내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에 울컥해지고, 눈앞이 흐려진다.

   사람들은 신체의 건강은 중요시하면서도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소홀한 게 현실이다. 신체의 건강과 함께 정신도 건강해야 온전히 건강한 것이다. 노년에 얻는 정신건강의 이상 중 대표적인 것이 치매이다. 60~70대에는 10% 이상, 80대에는 20% 이상이 치매에 걸린다는 통계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이상이 아닐까 체감되는 게 사실이다.

   90세 넘으신 한국의 시어머님이 치매 증상을 보이시어 형제, 자식들의 염려와 고초가 비상 상황이다. 그래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정신건강은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정신건강을 위한 보조기구는 없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최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독서나 일기 쓰기, 영어 공부 등 뇌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좋은 방법은 가까이에 충분하나, 많은 사람들이 읽기와 쓰기에서 너무 멀어져 있다. 종이신문이라도 열심히 읽고 일기라도 매일 쓰고, 규칙적으로 집주변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습관 등이 뇌신경 세포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나를 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시어머니도 그러셨지만, 많은 어르신이 초기 치매 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가족들도 노화로 인한 건망증이라고 생각하고 치매 초기의 중요한 치료 시기를 놓친다.

   초기치매 시기의 중요한 치료와 뇌 학습 운동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중증 치매 환자로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지기능뿐만 아니라 운동기능도 저하되는 단계에 이르면 

   돌보는 가족들의 스트레스는 한계치에 도달한다. 간병 살인, 간병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존엄성, 인격이 있는 부모님, 배우자를 가족이 끝까지 손잡고 있다가 홀가분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보내드릴 수 있는 공적 간병제도가 완성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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