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걷기운동가“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하고 프랑스 정부에서 후원하는“쇠이유(Seuil)” 프로그램이 있다. 소년원에 수감 중인 청소년들이 3개월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포함 총 2,000km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교정 프로그램이다. 판사의 동의하에 각서를 쓰고 자원봉사자와 함께 고행길에 나서지만, 야생마 같은 범죄 청소년들은 처음엔 내가 왜 고통스러운 걷기를 해야 하나, 하며 강한 저항과 거부감을 가지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차츰 순응하며 적응해 나간다.
동반자와 걸으면서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고하는 법을 배우면서 사회적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차츰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기 시작하며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 매사에 적대적이던 그들이 걷기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성과를 거둔다. 보통 수감자들의 재범률은 85%에 이르나 쇠이유 프로그램을 마친 청소년들의 재범률은 15%로 떨어졌다. 즉 85%가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하여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비용 또한 교도소 비용의 30% 정도로 저렴하단다.
이“쇠이유 프로그램”에 착안하여 백두대간 종주를, 비행 청소년 교육과정에 접목시켜 성공적으로 시행한 경기도 어느 고등학교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청소년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심각하다. 과도한 입시 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손쉬운 음주 및 약물 접근 등으로 탈선을 부추겨 왕따나 만연한 학교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를 고민하던 한 교사의 열정이 백두대간 종주를 문제 학생들에게 의무화시킨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들이 달라진 것이다.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걷는 동안 자신에 대한 성찰과 400km 백두대간 종주 코스를 완주하면서 얻는 성취감과 자신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을 배우며 문제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에 고무된 학교는 전교생에게 확대 실시하며 졸업전까지 백두대간 종주를 의무화하게 된다.
이 교육의 성공을 확인한 도 교육청은 산하 학교들에게 이 프로그램의 도입을 적극 권장한다. 걷기를 통한 작은 기적은 이어져서, 2024년 9월 서울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 8명이 청소년 보호 치료시설로 지정된 가톨릭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에서 시행한, 백두대간 400km 종주를 저명한 여러 산악인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마치며, 걷기를 통한 문제 청소년 교육과정의 사회적인 공감과 제도적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에 자원봉사에 동참해서 기뻤다는 어느 산악인의 후일담에서 삶의 작은 희망을 본다.
“쇠이유(Seuil)”는 프랑스어로 경계, 문턱이라고 한다.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견고한 편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기성세대가 훈계조로 얘기하는 걸 못마땅해하는 젊은이들이 비아냥대듯이 내뱉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을 들으면, 나 역시 그들의 눈에는 편견에 갇힌 꼰대는 아닐까. 모든 갈등의 저변에 적지 않은 편견이 자리하고 있을 텐데, 우리는 그 편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아이들조차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방향성이 가끔 어긋나 보이고 못마땅한 것 역시,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생각하면 좀은 두렵기조차 하다. 그러다 최근에 읽은 글 중에 무릎을 치며 공감한 내용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학교 수업도 빼먹고, 빈둥거리고, 예의가 없으며 자기중심적이고 선생님과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나약하기 짝이 없어 그들의 미래가 정말 걱정스럽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 내용은 놀랍게도 기원전 17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무려 3700년 전에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의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이다.
자식이 속 썩이며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은 3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마 그때의 학생들도 오늘날과 비슷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옛 현인들의 예측에 따른다면 젊은 세대가 갈수록 나약해지고 멍청해지고 이기적이므로, 세상은 진작에 망했어야 마땅하겠지만 세상은 여태껏 망하지 않았고 점점 발전을 거듭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잘 굴러왔다. 엄연한 이 사실에 위안 삼으며 우리 집 아이들과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