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와 여행을 다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석양에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을 감상하는 것이며, 하늘 가득히 펼쳐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해가 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바라보곤 합니다. 오늘은 제가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 저녁노을보다 더 아름다운‘저녁노을’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 때 바그너나 말러보다도 R. 슈트라우스 음악을 먼저 듣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성음사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클래식 음반을 발매할 때, 슈트라우스 음반이 먼저 출시가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연유로 인해서 제가 R. 슈트라우스 음악을 일찍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슈트라우스 곡은 귀에 익은 조성이 아니고 불협화음도 많이 사용되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벽을 넘어서면, 듣고 또 들어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이끌리게 됩니다. 

   오늘 소개하는“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보석함 속의 보석처럼, 많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에서도 제가 가장 아끼는 곡 중의 한 곡입니다. R.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84세가 되는 1948년 스위스에서 작곡한 이 가곡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시‘봄(Fruhling)’,‘9월(September)’,‘잠자리에 들 때(Beim Schlafengehen)’와 아이헨도르프(Joseph Freiherr von Eichendorff, 1788-1857)의 시‘저녁노을에(Im abendrot)'입니다. 

   작곡가로서 지휘자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1933년 11월, 나치 정권은 슈트라우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제국음악원장으로 임명되지만, 그러나 2년 후에 나치의 미움을 받아 강제로 사임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차대전 이후에는 반대로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명예는 실추되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84세의 슈트라우스는 노년의 길목에서 만난 질병과 자기를 향한 세상의 질타 속에서, 세상과 격리된 체, 1949년 5월까지 주로 스위스에서 외로운 망명 생활을 하였으며, 1948년 6월에야 친 나치 행위가 무혐의로 판결되어 비로소 1949년 5월에 가르미슈 Garmisch의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아들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의미 있는 작품을 작곡하도록 설득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슈트라우스는 아이헨도르프의 시‘저녁노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인 목소리를 위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저녁노을’시의 내용이 마침 황혼에 접어든 자신 부부의 심경을 읊은 것 같아, 지금까지 열심을 다해 이루었던 명성과 영광이 이제 와서 보니 부질없음을 깨닫고, 긴 인생의 피곤한 여정 후 힘겹고 지친 눈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것이 아마 죽음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묻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한 역설적으로‘4개의 마지막 노래’에서 허무와 운명을 넘어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해주는, 따듯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가곡은 독창과 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그리고 바그너-말러를 잇는 오케스트라 가곡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네개의 마지막 노래’는 파란만장했던 80여 년의 연륜에서 나오는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은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집니다. 네 곡 중에서도 저는 처음 작곡한‘저녁노을에’(마지막 곡) 를 특히 좋아합니다.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젊은 날에 보여주었던 그 화려하고 현란했던 넘치는 에너지의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단순하면서도 섬세하며 서정미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소프라노 독창과 때로는 대등하게 서로 주고받으며 시적 감흥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종달새 소리를 뒤로하고 조용히 길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안타깝게도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의 초연을 보지 못했으며, 1950년 5월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이 작품이 런던 앨버트 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문의 chesonghwa@gmail.com리하르트 슈트라우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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