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교향곡 9번 <밸리 클래식음악 동호회> 윤종화 회장

by Valley_News posted Feb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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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는 유대인으로 1860년 보헤미아 Bohemia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온화한 성품이었지만 아버지 베를하르트는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14명의 자녀 중,  첫째 아들은 생후 1년 만에 죽어 둘째인 말러가 장남이 됐었습니다. 그 후, 말러가 35세가 되기 전에 14명의 형제 중 9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가까이서 많은 죽음을 목격해서인지, 그의 교향곡에는 죽음과 장송곡이 들어있습니다.
   유대인을 천대하던 그 당시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말러는, 보란 듯이 37세가 되던 1897년 비엔나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이 됐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02년에는 상류사회에서 많은 남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14살 어린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명의 딸이 태어났는데, 1907년 첫 딸이 성홍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끔찍이 사랑했던 딸의 죽음으로 인해 비통에 젖어있는 있던 말러에게,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알마에게 퍼부어 알마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이런 연유인지, 몇 년 후에는, 아내 알마가 청년 건축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어 말러의 가슴을 찢어놓았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어린 시절부터 늘 그의 곁에 있었지만 딸의 죽음, 심장 판막증, 아내 알마의 외도를 겪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작곡한 작품이 교향곡 제9번이며, 말러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었습니다.
   1910년, 말러는 도비아코 Dobbiaco의 여름별장에서 교향곡 제9번을 쓰며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 안녕! 안녕!”이라는 글을 악보 밑에 휘갈겨 썼습니다. 말러는 장엄한 알프스의 절경으로 알려져 있는, 돌로미티 Dolomiti 산군이 바로 보이는 산장에서, 아픈 마음을 움켜쥐고 온 열정을 퍼부어 위대한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교향곡 9번이 왜 이렇게 저의 가슴을 치게 만드는지... 아마 장엄한 돌로미티의 비경이 음악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심장병으로 병약해 있는 중에, 사랑하는 딸의 죽음과 젊은 아내의 외도로 인해, 깊은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 말러를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악장 서주의 아다지오 선율,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으로 한숨같이 느린 저음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인생의 고뇌, 절망, 체념, 운명에의 순응 등을 느끼게 해 주는데, 제일 마지막 콘트라베이스의 반주로 반복 연주되다가 피아니시모로 마무리되는 부분에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영원히 사라지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해 줍니다. 다른 악기들은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죽어가듯이 ersterbend’ 라는 악상 지시어를 끊어질 듯 여린 소리로 연주되다가 갑자기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 ‘아이들은 잠깐 외출했을 뿐이다’의 선율이 연주됩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천국으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도 곧 그 광명 넘치는 천국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현세와 내세를 주제로,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그의 마지막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11년, 말러는 교향곡 제10번의 작곡을 시작했지만 채 끝내지 못하고 5월 1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러의 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장녀의 유골과 함께 비엔나 교외 그린칭 묘지에 안장됐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말러를 경멸했던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문의 chesonghwa@gmail.com명곡해설_말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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