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 - 봄의 제전 - <밸리 클래식음악 동호회> 윤 종 화 회장-

by Valley_News posted Aug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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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 곡을 Walt Disney가 제작한 Fantasia 만화 영화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러시아에서 1882년에 태어났지만,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당시 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파리에서 1939년까지 지내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1939년부터 1971년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서 활동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음악 평론가들은 스트라빈스키를 “혁신가’‘반항아’ ‘이단아’라고 부릅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혁신가라면, 베토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베르리오즈도 한 때 혁신가로 불린적이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대표곡은 세 곡의 발레 음악입니다. 당대의 예술 기획자였던 디아길레프 Sergei Diaghilev (1872~1929)의 의뢰로 탄생한“불새 Firebird”, “페트루시카 Petrushka”, “봄의 제전 The Rite of Spring”이 던져준 신선함과 파격으로 인해, 스트라빈스키는‘새로운 시대의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 The rite of Spring”은 1911년 작곡을 시작해 1913년 초연됐습니다. 앞서 작곡한“불새”와“페트루시카”보다 더 원숙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음악은 샹젤리제 극장 The Theatre des Champs-Elysees에서 발레 공연으로 초연된 이듬해에 연주회용 버전으로 러시아와 파리에서 다시 연주됐습니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는 쿠세비츠키 Koussevitzky가 지휘했고, 파리에서는 발레 초연의 지휘를 맡았었던 피에르 몽퇴 Pierre Monteux가 지휘봉을 들었지요. 

   스트라빈스키는 특히 파리 연주회에 대해 흡족한 소감을 남겨놓고 있습니다.“샹젤리제 극장에서의 소동 이후 “봄의 제전”은 드디어 빛을 발했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음악을 방해하는 무대 장치가 없는 연주회였기 때문에, 청중은 집중해 음악을 듣고 열정적으로 손뼉을 쳤다. 작곡가로서 보기 드문 성공이었다.” 

   이 음악은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러시아 이교도들의 태고(太古) 의식을 연주하는데, 2부(Part 1, Part 2)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는‘대지에 대한 경배’(L’Adoration de la terre)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서주로 시작해 ‘봄의 징조, 젊은 처녀들의 춤’‘유괴의 유희’ ‘봄의 론도’‘서로 다투는 부족들의 유희’‘현자의 행렬’‘대지에의 찬양’ ‘대지의 춤’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원시의 들판에서 남녀들이 춤을 추다가 짝을 찾고, 부족 사이에 대결이 등장했다가, 부족의 장로들이 이를 진정시키고 대지를 경배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춤을 춥니다.  

 

‘희생’ 혹은‘제물’(Le Sacrifice)로 제목을 번역할 수 있는 2부는 서주로 시작해‘처녀들의 신비한 모임’ ‘선택된 처녀에 대한 찬미’ ‘조상의 혼을 불러옴’ ‘조상들의 의식’ ‘희생의 춤, 선택된 처녀’로 이어집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세 번째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그의 작품에서 하나의 커다란 획을 긋고 지나갑니다. 사실 그의 이전 작품을 보면 "페트루시카"에서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적 색채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불새"에서도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봄의 제전"을 정점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즉 신고전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곡으로 인해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은 18세기에 베를리오즈가 끼친 영향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즉 초연 때는 청중들이 도저히 수긍하기 힘든 면이 있었지만, 그 후의 연주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열렬한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스트라빈스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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