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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모빌리언스의 세상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새해 아침에 세운 결심들을 지금도 잘 지키고 계신가요? 작심삼일로 끝나지는 않았는지요?

앞으로 당분간 한국 뉴스는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

제 새해 결심 중의 하나였습니다. 안 보고 안 듣는 편이 마음 편하고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엉뚱한 결심까지 한 겁니다. 금방이라도 나라가 뒤집어질 듯 시끄러운데 잘못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아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알 길도 없고, 날마다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는 아줌마들의 얼굴도 밥맛 떨어지고

그래서 단단히 결심을 했는데,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글을 써야 하고 가끔 방송에도 나가야 하는 처지이니 안 볼 수가 없네요. 앞날이 은근히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구요그나저나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시려나?

하지만, 앞으로는 되도록 한국 정치 이야기보다는 우리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올해는 연초부터 비가 제법 왔으니 봄의 색깔이 참 아름답겠구나, 가뭄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앞으로는 트럼프 놀이를 삼가야 하는 건가, 트럼프보다야 우리의 동양화가 한결 더 좋은가뭐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습도 이리저리 잘 살펴, 고칠 것은 고치고 구부러진 곳은 바로잡아야겠지요.

*

우리네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하고 따져봐야 할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령 첨단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관계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일 겁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기술 등 제4차 산업혁명도 무서운 기세로 진행 중이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에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그러다보니,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기계에 끌려 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지요.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보면, 기계 탓에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요.

스마트폰의 나이는 이제 겨우 10살밖에 안 됐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아이폰을 처음 소개한 것이 10년 전인 200719일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혁명적인 제품이 나오죠. 오늘부터 애플은 휴대전화를 다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잡스의 선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새롭게 바뀌었고, 지난 10년간 아이폰은 전 세계에서 10억 대 넘게 판매됐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인류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수퍼맨으로 가는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그 시작은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이민화 KAIST 교수의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류가 과거에는 갖지 못했던 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죠. 실제로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삽니다. 기저귀 찬 갓난아이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시대라지요.

이처럼 24시간 스마트폰과 함께 살아가는 신() 인류를 학자들은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라고 부른답니다. 호모 모빌리언스는 행복할까요?

눈 깜짝할 사이에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4624만 명으로, 2~6세 유아기 인구를 제외하면 한 사람이 한 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쓰는 셈이랍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막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폰 출시 10주년을 맞아 <스마트폰 이후 세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 내용의 몇 구절을 옮겨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인터페이스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기계와 인간, 자연과 인간, 너와 나처럼 둘 사이에 가로놓인 접합공간이 인터페이스인데, 스마트폰은 기계와 인간의 사이를 없앴다

찻잔이 뜨거워 만질 수 없을 때 손잡이를 달아주면 해결된다. 쥘 수 없는 뜨거운 잔과 나 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손잡이가 바로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인터페이스 혁명 이전, 즉 실체 개념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활자도, 컴퓨터도 지배자의 전유물이었고 그래서 빅 브라더가 존재했다. 그러나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조지 오웰이 빅 브라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1984년 바로 그해에 애플2PC를 만들어 오히려 민중이 관료 체계를 감시하는 역류현상을 만들어 냈다.”

세계 유일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혼자만 가진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다. 스마트폰은 바로 관계 중심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아날로그적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전화하고 문자 하는 내용의 상당수가 결국 언제 만나자는 것이다. 디지털이 발전했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행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AI 세상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호주머니 속에서 이미 싹트고 자라고 있다. 인류가 해야 할 일은인공지능인공지혜로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대립하지 않고 보완하는 조력자가 되도록 법·제도·윤리적 가치를 정비하는 게 우리가 시급히 할 일이다.”

“(한국이 처한 AI 현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차를 타고 떠나가고 있는데 지금 바로 뛰어가면 여자가 내민 손을 잡아 함께 타고 가는 해피엔딩이지만, 한발 늦으면 기차에 가속이 붙어 따라붙을 수가 없다. 한국의 AI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이처럼 혁명적인 편리함으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기계이지만, 그저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어두운 그늘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죠.

스마트폰을 비롯한 IT 기기의 부작용은 이미 심각합니다. 중독이 되기 때문이지요.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IT 기기로부터 자유로운 마지막 저지선이라 믿었던 목욕탕마저 뚫리고 말았다는군요. 아이들은 목욕탕에서조차 스마트폰에 매달려 쉴 새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본답니다. 기계의 노예가 된 셈이니, 생각해보면 참 서글픈 이야기죠.

한국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합니다. 중고생 10명 중 9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데, 그중 스마트폰 없으면 금단현상이 생기는 중독 위험군이 31%나 된다고 합니다. 성인의 두 배 이상이랍니다.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 때문에 학교와 집 모두 전쟁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웹툰 보는 걸 막기 위해 아침에 스마트폰을 수거해 오후에 돌려주느라 바쁘다. 집에선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 한두 시까지 친구들과 채팅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부모가 수두룩하다.”-<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김연주 기자의 칼럼 <목욕탕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중에서

미국에 사는 우리 자녀들의 현실은 어떨까요? 이에 대한 통계 자료는 아직 없지만, 아마도 한국 청소년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사는 바람에 창의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참을성도 없어지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런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고,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는군요. 그런데도 그런 아이들을 탓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의 엄마들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으니답답하다는 겁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는 소용돌이라지만, 어렸을 때 창의성과 참을성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죠.

그뿐이 아닙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사용하지 않고 옆에 놓아두기만 해도 이용자의 주의력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대학의 가와하라 준이치로 교수가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입니다. 가와하라 교수는 각종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공부할 때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도록 떨어진 곳에 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답니다.

보행 또는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이 주의력을 분산시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곁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주의력이 저하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기는 처음이라는군요.

아무튼, 스마트폰 중독이나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형편입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지혜를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네요. 지식 말고 지혜를 길러야

 

스마트폰의 중요한 장점으로 사람과 사람을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소통의 기능을 꼽습니다. 세계 곳곳의 누구하고나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World Wide Web,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그물망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사람 냄새 나는 대화나 접촉은 갈수록 줄어들고, 훨씬 더 고립되고, 개인적 성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만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서 노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있다지요. 혼자가 편하다는 겁니다.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그물망 속의 고독,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와도 진심으로 맺어지지 못하는 쓸쓸함, 아는 사람은 많아도 참된 친구는 없는 외로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세대 간의 갈등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부딪침 말입니다. 기계에 익숙하지 못한 아날로그 세대는 원시인으로 괄시 받으며 도태될 판이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요. 이어령 교수께서 역설하는 <디질로그>라는 것이 이론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 실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컴맹(computer ignorant)이요, 폰맹이라고 고백하는 가수 한대수는 인터넷 문명이나 스마트폰을 매우 못마땅해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을 소떼같이 끌고 간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을 만나서 눈빛을 보며 천천히 대화하는 구석기 할배로 남을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요. 어쩐지 구석기 할배가 한결 인간적이고 따스할 것만 같네요. 가끔은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싱그러운 봄의 초록빛을 즐기고, 책을 읽고 시를 읊조리는 여유를 가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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