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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말폭탄 사이에서

  


 

총으로 흥한 자는 총으로 망하리라.”

지난 101일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뉴스를 접하며 떠오른 말씀입니다. 이 끔찍한 참사가 곧 총으로 망하는 모습으로 보인 겁니다.

두두둑두두둑드르륵드르륵.

흥겨워야 할 음악 축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환락과 자유의 도시, 세계적인 관광지 라스베이거스는 피로 물들었고,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잠겼습니다.

58명의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520여명이 부상당한 이 잔인한 총격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5분간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난사로 이렇게 큰 희생자가 발생한 겁니다. 거의 학살 수준이죠. 자동 소총으로 개조한 총으로대량 학살을 자행했다는 잔인함이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총기 사고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미국에선 그리 낯설지 않은 수치라는군요. 그만큼 미국에서는 총기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 되는 것일까요?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고 싶겠지만, 우리는 심각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총격범 스티븐 패덕(64)이 현장에서 자살한 데다 유서 등의 증거품도 남아있지 않아 범행의 동기는 여전히 미궁 속이지만, 오랜 동안 범행을 꼼꼼하게 준비했고, 더욱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짰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범행도 계획했었다지요. 테러가 아닌외로운 늑대형(lone wolf)’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건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미치광이의 짓이지요.

라스베이거스 참사를 계기로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또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의 총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4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총기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공화당이 하원과 대통령(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한 총기를 규제하는 핵심적인 법안은 통과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여러 번 총기 판매 금지안이나 규제안이 발의됐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 뒤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대한 로비력이 있다는 시각이 많지요. 트럼프는 역대 대선 후보 중 가장() 총기정책을 가지고 나온 후보로 꼽힙니다. 그러니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대형 총기난사 사건(mass shooting)이란 1명의 가해자에 의해 최소한 4명이상이 총기에 살해된 사건으로 정의한답니다. 이 정의에 부합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은 2015년 말 현재까지 지난 50년 간 매년 2.5건 이상 발생해온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밝히고 있습니다.

사망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사건도 mass shooting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미국에서는 거의 매일 한 건 정도의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대로 미국의 총으로 세워진, 총의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시중에 풀려나간 각종 총기는 3억정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인구 100명당 88정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를 빼면, 전 미국인들이 무장한 셈으로, 미국의 총기 소지율은 내란상태에 있는 예멘보다도 훨씬 높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 총기 구입율은 올라가는 것이 미국적 현상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그러면 그 반작용으로 총기 구입은 오히려 느는 것이죠.

그런데 법적인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결국 총을 가진 사람의 상식이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으니, 불안하기 그지없는 것이지요.

총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합니다. 거의 모든 남자가 군대에 가서 총을 다루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각해야 할 점도 많아집니다.

사람들이 불안한 것은,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끔찍한 일이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 * *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참사에 겹쳐 한반도와 북한의 핵 실험이 떠오르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겁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은 서로를 미치광이(madman)라고 부르며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미치지 않았지요.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압니다. 작전상 미친 척하는 거지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 폭탄은 정말 아슬아슬합니다. 오가는 말들이 어찌나 살벌한지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아 조마조마 오싹해요.

충돌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가 한꺼번에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공개적으로 수위를 높이면서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는데, 말과 행동이 다르면 비겁자가 되기 때문이다. 제 발등을 찍는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불장난을 중단해야 한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의 칼럼 <미치광이손에 맡겨진 한반도> 중에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전쟁에 대한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되면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까를 추산한 숫자가 발표되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사람들은 천하태평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뉴스를 봐도 그렇고, 한국에 전화를 해서 친지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예요. 추석 연휴라고 10일을 내리 놀고, 그것도 해외로 여행 가서 돈을 펑펑 쓰고이해가 잘 안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는 말 폭탄을 듣고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포를 느껴야 마땅하다. (중략)

우리 모두 너무 무심하다. 저쪽은 우리에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퍼부을 수단으로 미사일이 좋을지 잠수함이 좋을지 연구에 몰두할 때, 이쪽에서는 어느 집 파스타가 더 맛있는지, 전어는 회가 좋은지 구이가 좋은지 떠드는 먹방에 몰두하는 광경을 보면 공포의 전율과 웃음이 동시에 터지려 한다. 영화를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의 정치판이나 사회 자체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정말이지 건국일이 언젠지 따질 때가 아니라 망국을 피하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주경철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조선칼럼> 중에서 교수

그래서 <설마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설마 북이 공격을 하겠나, 설마 북이 핵폭탄을 터뜨리겠나, 설마 핵EMP 공격이 있겠나, 공격을 당해도 설마 석기시대가 되겠나는 등 우리 사회는설마로 타성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핵 위기는 과거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도설마 공화국에서는 대비나 준비가 아니라설마가 대세다.”

-<조선일보> 사설 중에서

 

시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도 주변국들 사이에서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채,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과거 들추기에만 열을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10최근 안보 상황이 어려운 것은 외부에서 안보 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에서 안보 상황을 설명하며 한 말입니다. 10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일로, 북한이 이날을 전후해 또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았던 날이었지요.

이어서 문 대통령은외부적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만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내부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참 답답합니다.

 

외신들은 이처럼 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침착하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들을 두고전쟁에 무감각하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같은 고요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고, 전쟁의 공포를 극복해서가 아니다. 수십년간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한국인들의 깊숙한 내면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대화 속에서 긴장과 공포는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왔지만, 최근 매일 나오는 뉴스에 따라 이 같은 긴장이 우리의 내면에서 서서히 고조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바로 국경 너머에 있는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할까, 방사능이 누출될까 무섭고, 점차 고조되는 말싸움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까 무섭다.”

그나마 이번 추석 명절선물로 <전쟁 가방> 또는 <생존배낭>이 인기를 모았는데, 그 안에는 전투식량, 일회용 담요, 침낭, 방독면, 안전모, 휴대용 라디오, 휴대용 랜턴 등의 비상용품이 들어 있답니다. 또 자택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방공호의 위치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실제로 방독면, 전투식량 등 재난 대비용 물품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있고, 특히 통신망 단절과 접속 등에 대비한 휴대용 라디오 판매도 증가했다고 하는군요.

어쨌거나 <미치광이손에 맡겨진 한반도>라는 신문칼럼 제목은 우리를 슬프고 불안하게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우리가 평화 만들기의 주역이 돼야 마땅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말입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라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고 고무적입니다. 이 단체의 사무총장이핵무기 보유는 물론 핵무기 사용 위협도 불법이다. 미국과 북한 둘 다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백 번 옳은 말씀이죠.

소설가 한강은우리는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무의미하며, 승리라는 공허한 구호는 터무니없고 불가능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또 다른 대리전을 절대적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다<뉴욕타임스>에 실은 칼럼에서 강조했습니다. 그 칼럼의 제목은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는 없다>입니다.

말은 옳은 말인데, 걸핏하면 핵 실험을 해대는 북쪽의 미치광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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