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선 쌍둥이 형제의 슬픔

by Valley_News posted May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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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답하기만 합니다. 좋아질 기미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지요.  

  6.25를 맞으며, 오래 전에 소개했던 글 하나를 다시 읽어봅니다. 소설가 장용학 선생의 <원형(圓形)의 전설>이라는 장편소설 첫 머리에 나오는 글을 읽기 쉽게 풀어 쓴 글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제 세월이 더 흐르고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다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특히 꽉 막힌 현실을 바라보면, 너무 가슴이 저리고 답답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금 차근차근 더듬어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가 장용학 선생은 매우 중요한 작가인데 지금은 거의 잊혀져 있어서 참 안타깝군요.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일란성 쌍생아이니까 형, 동생을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편의상 내가 형이라고 해두기로 하지요.

  내 이름은 <자유>올시다. 동생의 이름은 <평등>이구요.

 

  우리의 족보를 따지자면 르네상스를 어머니로 하는 프랑스혁명이 낳은 쌍둥이올시다.“자아의 발견”이라는 정자로 인해서 우리가 생겨난 셈이지요.

  물론 어렸을 때는 무척 사이가 좋았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넓은 벌판을 뛰어놀며, 네가 크냐, 내가 크냐 토닥거리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엇갈리거나, 생각이 달라서 다툰 적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인 것입니다.

 

  철이 들고 머리가 커지자, 우리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정하게 같이 떠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떠났지요. 

  나는 푸른 바다를 향해 남쪽 길을 택했고, 동생은 육로로 북쪽 길을 택했습니다. 아니면,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졌는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지구를 반 바퀴쯤 돌아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딱 마주쳤지요. 

  그러나… 그러나, 세월이 너무나 오래 흐른 뒤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거쳐 온 곳의 공기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매우 당황스럽고 슬프기 그지없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의 우리 일란성 쌍둥이가 원수로 변해버렸더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형제의 이름마저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어색하고 딱딱한 이름으로 바꿔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계속 푸른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푸른색이 되어 있었는데, 동생은 아마도 땅만 쳐다보면서 피를 흘렸는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비극이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가 원수로 변해버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원수가 된 우리는 된통 싸웠습니다. 서로, 길을 비키라고 싸웠습니다. 서로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면서 치고 박고, 밀고 밀리면서 죽어라고 싸웠습니다. 정말 굉장했습니다. 피도 엄청 흘렸지요.

  그리고는 어느 지점에선가 팽팽히 맞섰습니다. 한 치라도 물러서면 죽을 것처럼 이를 악물고 서로를 노려보며 맞섰습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피비린내 나는 으르렁거림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38선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건 정말 피비린내 풍기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극의 냄새와 그림자는 아직껏 걷힐 기미도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의 우리 일란성 쌍둥이는 그렇게도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형제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걸 잊을 수야 없지요. 그리고 녹슨 철로 사이에 풍성하게 피어있는 들꽃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이 <자유>와 <평등>이 아니고 <사랑>과 <평화>였더라면, 우리가 그때 각자 다른 길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젖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뒤늦은 뉘우침이긴 합니다만…….

  괴롭고 피곤하고 슬픕니다. 형제가, 그것도 일란성 쌍둥이가 원수로 변해 맞서있다는 것이 견디기 고달프고 아픕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형제니까요.

  <자유>와 <평등>이 서로 화해하고 웃으며 악수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밝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건 분명한 일이죠. 그런 날이 분명히 올 겁니다. 틀림없어요. 사람들이 사랑과 참을성을 가지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그날은 꼭 올 겁니다. 그렇게 믿습니다.“무기여 잘 있거라…”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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