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공존을 위한 기도

by Valley_News posted Mar 31,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편집자의 말>

 

  올 봄에는 큰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통에 정신이 없네요.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완전히 잦아들지 않아 불안한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전쟁이 일어나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참혹한 비극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지난 3월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역대 비호감  진흙탕 싸움 끝에 윤석열 후보가 아주 작은 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우리 조국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화계에서는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4.29 LA폭동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이 시대에 전쟁이라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 말고는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미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니,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에 우리가 도울 부분이 생기겠지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하고 싶습니다. 

 

  주님!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사이구 30주년을 맞으며

   오는 4월29일은 LA폭동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0년 전의 아픈 기억과 그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이구 30주년을 맞으며 한인문학계는 폭동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집을 발간할 예정이고, 미술계는 한인 미술가들과 흑인 화가들의 합동 작품전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의 근본을 살펴보고 반성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지요. 

 

  엘에이 폭동은 미주 한인이민역사에서 가장 아프고 중요한 사건입니다.

  엘에이 한인사회는 이유도 모르는 채, 아무런 대비도 없이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는 불행을 겪었고, 정신적 상처가 컸지요.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종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지혜를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이구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목적은 아픈 상처를 되짚으려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극복의 지혜를 모색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의 마당을 넓히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폭동의 피해와 아픔을 되짚어보는 일보다, 폭동 바로 직후인 5월2일 한인타운 중심부에서 감동적으로 펼쳐졌던 10만명 평화대행진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화합과 단결, 평화공존이 우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겁니다. 

  사이구 30주년을 맞는 우리 한인사회는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핵심은 LA폭동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과연 30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달라지기는 했는가, 한인들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변했는가 등등의 질문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인사회의 규모와 힘은 커지고 돈도 많이 벌고… 했지만 사고방식이나 정신 상태는 거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미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이고 민감한 문제인 인종갈등만 해도,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투덜거리면서, 다른 쪽으로는 심하게 인종차별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요. 가령, 백인들 앞에서는 주눅 들어 눈치 살피며 살랑거리면서, 흑인이나 멕시칸 등 다른 인종들을 까닭 없이 낮잡아보는 고약한 인종차별, 자신을 백인으로 여기는 바나나 근성…

  뿐만 아니라, 일반론을 이야기할 때와 막상 나의 문제로 닥칠 때 생각이 달라지는 이중성도 지적하고 싶네요. 가령 자녀가 타인종과 결혼한다고 할 때, 배우자의 피부색에 따라 부모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한국인의 인종차별 참 유별납니다. 계속 외적으로부터 침략 당해온 역사나 쇄국정책 같은 데서 비롯된 사고방식일까요? 예를 들어, 다른 나라사람을 부를 때 꼭‘놈’자를 붙이지요, 왜놈, 뙤놈, 양놈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해외동포가 750만에 이르는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이구 30주년에 되새겨야 할 교훈 중의 하나입니다.

 

  사이구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또 터질 수 있습니다. 미국사회의 인종문제는 기본적으로 백인과 흑인의 갈등인데,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채로 조심조심 살고 있는 형편이니… 인종주의자들은 날이 갈수록 극렬해지고 있고, 이런 현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도 있고… 

  인구 통계에 의하면, 머지않아 백인이 소수계가 될 거라고 하지요? 이런 현실에 대한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위기의식도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백인과 흑인이 부딪치는 현장에서 우리 같은 유색인종이 중간에 끼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지요.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를 긴장시킨 Black Lives Matter 물결이나 코로나 19를 핑계로 발생하는 아시안 증오범죄 같은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언제 건 다시 터질 수 있는 지뢰가 사방에 깔려 있어요.

 

  우리 스스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과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달라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객관화시켜야 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공부가 필요하지요. 

  미국 공립학교에서 정식으로 도입한 <인종학> 같은 것을 우리 어른들이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특히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어온 가슴 아픈 역사 같은 것… 그래야 객관적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폭동과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인종갈등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슬기로운 미국 생활을 위해서는 백인, 아시안, 히스패닉, 원주민 등 다양한 인종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만, 특히 흑인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소설가 김영문의 유고집 <흑과 백 그리고 나>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흑인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이 신대륙에 납치되어 와서 어떠한 고난과 형벌을 받으면서 살아왔는지 알아야 한다. 흑인의 역사를 모르고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 이유도 없이 흑인을 멸시하고, 환영해주지도 않는 백인 쪽에 빌붙어 서려고 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폭동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동안 <사이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우리는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다”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요. 하지만 언제까지나‘피해자 하소연’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 비극이 일어난 근본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에 눈을 돌리고, 극복의 지혜를 함께 찾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앞날의 계획이나 방향설정은 우리 2세, 3세들을 주역으로 설정하고 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폭동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해본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앞날의 주인공은 당연히 우리 2세, 3세들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들은‘교포’나‘재미한인’이 아닙니다. 미국 시민, 미국 사람이에요. 이민 1세들과는 환경도 생각도 다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들을 위해 판을 깔고, 마당을 펼쳐주는 것이 1세들의 의무입니다. 

  특히, 우리 2세들에게는 정체성 확립이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난 우리 2세들은 재미교포나 나그네가 아닌 미국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사회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부모 세대나 비슷한 갈등을 겪습니다. 그래서 정체성과 자신감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바람직한 방향설정을 위해서는 1세와 2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이와 같은 공부와 반성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인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금 우리가 서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남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제대로 살고 있는가… 등의 근본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확신이 없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지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 윤석열.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