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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올해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군요 두루두루 건강들 하시죠?
  그나저나 투표는 하셨는지요? 12지구 시의원 뽑는 선거 말입니다. 혹시 안 하셨으면 꼭 하시기 바랍니다. 6월4일(화)이 투표일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나중에 큰소리치기 어려워지는 법이죠.
  부디 한국계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다고 당장 무슨 구체적 이득이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만, 상징적 의미는 클 테니 말입니다.

   칠순을 앞둔 전쟁둥이의 답답함
  6월 달력을 보면 16일과 25일에 눈길이 머뭅니다. 무슨 날인지 아시죠?
  6.25 한국전쟁 중에 태어난‘전쟁둥이’가 내년에 칠순이 됩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찢어진지 70년이 된다는 이야기올시다, 70년!
  아무쪼록 꽉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뻥 뚫리고, 기쁜 마음으로 칠순을 맞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네요. 이른바 삼팔따라지나 그 후손들의 마음은 더하겠지요.
  한국과 미국과 북한의 꼭대기의 높은 분들이 어느 날부턴가 느닷없이 이리저리 만나 웃으며 악수하고, 같이 밥 먹고,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다정하게 사진 찍으며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요란하더니… 웬걸…
  미국과 북한은 짜증스러운 밀고 당기기를 지겹게 되풀이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그저 눈치만 보면서 안절부절 좌불안석 하는 가운데 세월은 지나가고…
  중재자라니? 아니, 우리가 왜 중재자입니까? 당사자이지 어째서 중재자라는 겁니까?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찢어지고 갈라지는 현실입니다. 도무지 접점도 없고 손잡을 기색도 없이 으르렁대며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는 서글픈 형국입니다.
  SNS 덕에 개인방송 전성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바야흐로 전국민의 정치평론가 시대가 되었고, 확인하기 불가능한 가짜뉴스와 아니면 말고 식의 카더라 통신이 세상을 뒤덮고 있고, 부끄러움 모르고 막말을 마구 쏟아내는 정치가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꼴도 보기 싫고… 정말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무슨 뾰죽한 대책이 없다니 그저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언제까지나 참아야 하는 걸까요? 하긴 뭐, 이미 70년이나 참으며 사는 답답한 세월이 흘렀으니… 못 참을 것도 없겠지요, 희망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죠… 안 그렇습니까!

   아버지는 어디 계시나?
  16일은 아버지날입니다. 아버지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날이랍니다.
  아버지날을 맞으며 저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머리 숙입니다. 이른바 삼팔따라지로 야멸찬 타향에서 고생깨나 하고,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도 큰 낙 없이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을… 살갑게 대하며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후회는 물론 크고 큽니다. 이루 말로 다 못하지요.
  막막한 미국땅에서 살갑게 지내는 친구도 없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던 제 아버지는 그나마 바둑을 조금 두셨는데, 저는 바둑을 둘 줄 모르기 때문에 바둑판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을 수 없었습니다. 바둑을 배워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대화도 나누고 했으면 좋았을 걸… 그런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말년 몇 년은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핑계로 병 수발도 제대로 못 들었지요. 아버지는 그렇게 후회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존재합니다.
  아버지날이면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나는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지요. 
  그런데, 아버지날이라는 요상한(?) 날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기원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네요.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옛적에 미국 워싱턴 주 스포캔에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 1882-1978)라는 효녀(孝女)가 살았는데… 어머니의 날 설교를 듣던 중 문득 <아버지의 날>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 윌리엄은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어머니 없이 6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일찍 세상을 떠난 훌륭한 아버지였으니…
  어른이 된 소노라 여사는 아버지의 희생과 홀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하게 아버지 역할을 해냈는지를 큰 고마움과 함께 깨달았다고…
  그리하여 1909년, 소노라 여사는 자신이 다니던 스포캔 교회의 목사와 몇몇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생일인 6월 5일에 아버지들에게 헌정하는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목사는 예배를 준비하기에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로 몇 주 후인 6월 19일에 헌정 예배를 집전했다.
  그 이후 워싱턴 주는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기념했고… 여러 주와 단체들이 연례 아버지의 날 선포를 위해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 날의 취지에 동감하고 특별연설도 했지만, 그 뒤 50년이나 지난 1966년에야 존슨 대통령의 법적 고시로 아버지날이 공식화되고, 많은 나라로 행사가 전파되었다고.
  아버지날에 대한 지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정해지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이유는, 아버지는 가정에 무심한 이미지였고, 반짝 특수를 노리는 상술일 뿐이라는 반발이 거세서,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충 간추리면 이런 사연입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아버지날이 정해진 건 1966년이라는 이야기올시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헝가리,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아버지날을 지키며, 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한다지요.
  물론 고맙기는 한데, 아버지의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속절없이 현실에서 맞는 아버지날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쓸쓸하네요.
  눈 밝은 미래학자들의 예언대로 날이 갈수록 세상이 모계사회로 변해가고 있으니 아버지의 존재는 더 초라해지겠지요. 생물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이 들어 힘없고 권위 떨어진 늙은 아버지들은 더 쓸쓸하고 허전하겠지요. 늙은 아버지의 신세를 풍자하는 <할배개그>들이 현실을 말해줍니다. 예를 들어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라든가 <퍼런 눈두덩이, 왜 맞았나?> 같은 우스갯소리들은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진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 들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노인들의 서글픈 자화상이지요. 그 분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아버지!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상징입니다. 아버지는 곧 어른입니다.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 같은 존재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 미주한인사회도 지금 아버지(어른)가 없거나, 맥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비춰줄 등대처럼 당당한 어른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아버지날이 새삼스럽네요.
  
  가수 최백호 씨가 칠순 기념으로 만든 음반에 실린 <동생아>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가 자못 상징적이고 찡합니다.
  “꽃이 지는 날에는 한 살이라도 젊은 네가 울어라.
  나는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먹고 놀련다.
  봄이 간다고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너무 잊히는 것들에 매달리지 마라.
  돌아오지 못하는 게 사람뿐이 아니다…”
  긴 말 할 것 없습니다. 아버지날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 걸어드리고(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더 바랄 것 없고), 아버지들은 걱정 모두 내려놓고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먹고 놀면 되겠네요! 안 그런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