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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기도

 

이 수 영

<후레쉬 코리아 바비큐> 대표

 

 

봄이 오면 지금도 아련히 가슴속 이름으로 기억되는 형제분이 한 분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햇살이 창가를 두드리고 봄날의 아지랑이가 나의 창가를 두드려도 가슴에 스며든 아픔은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어느 사형수와의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수녀님의 권고로 어느 사형수와 인연이 맺어졌고, 1년간 얼굴도 모르는 채 깨알 같이 쓴 항공엽서를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제분은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었고, 동해바다를 헤엄쳐 이곳 남한에 와서 활동 한번 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서 살아가는 중 수녀님의 권고로 신자가 된 분이었습니다.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해서 맺어졌고, 그의 신앙은 놀라보도록 크고 깊게 자랄 때 귀한 하느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형제분의 모습에서 그 어린 시절 많이도 가슴 아팠고, 그 분의 모습 속에서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저 하늘나라 가장 빛나는 큰 별이 되어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고 있음을 믿으며, 여기 나원균 몬시뇰 주교님의 글이 너무 비슷하여 주교님의 글을 인용해봅니다.

 

 

사제 서품의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보좌신부로 혜화동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6년 전 혜화동 본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 어느 교도소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나 신부님이십니까? 저는 서대문 교도소의 신자 교도관인데 지금 즉시 교도소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 제가 “제가 무얼 잘못해서 교도소로 오라는 거요?”하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극비이므로 전화로 말할 수 없고 오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때가 1972년 5월 어느 날 오전 10시경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교도소 정문에 도착하자 전화를 건 신자 교도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하고 교도관은 말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 중에 환자가 있어 병자성사를, 병자 영성체를 요청하는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5명의 사형수가 집행되는데, 그 중에 2명 천주교 신자가 있어 신부님을 부른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형 집행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그때는 병아리 신부로써 교도소 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인데, 더구나 사형 집행을 참관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안내를 받아서 들어간 곳은 사형실이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50평 남짓한 방에 30여명의 교도관들이 경호를 하고 있었고, 단상 위에는 8명의 참관인이 있었고 한쪽 끝에는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제가 늦게 참석하였기에 10시부터 시작된 사형 집행은 이미 첫 번째 사형수가 심문 절차를 밟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자마자 첫 번째 사형수를 보고 얼마 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생각하면서 그의 얼굴을 보니, 창백하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면서 살려달라고 소종을 피우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인정사정 없이 절차가 끝난 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사형수도 들어와서 절차를 밟고서 교수형에 처하기 직전에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김일성을 찬양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말입니다. 그 날 공교롭게도 5명 모두 다 간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것을 외치면서 죽는 사형수를 볼 때 공산주의가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그의 신조로써 그렇게 했을 것으로 봅니다.

 

세 번째 사형수의 차례가 되었을 때 똑같은 절차가 끝나고, 앞에 두 사람이 너무나 힘겨워하면서 마지막 죽음을 보여주었기에 집행장은 느닷없이

“당신 뭐 할 말 없느냐? 여기 목사님도 계시고 저기 신부님도 계신데 하느님이라도 믿어볼 마음이 없느냐?”하고 제안을 하더군요.

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기분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너는 죽는 마당에 천당이 있다던데, 혹시 아냐 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에 갈지. 지옥이 있다던데 혹시 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이라도 가고 싶지 않느냐”는 말로 들렸습니다.

 

저는 혹시 그 세 번째 사형수가 대세라도 달라고 하면 내려주려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형수는 그런 권고를 한 집행장을 빤히 쳐다보면서 “뭐라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나를 죽게 하는 하느님을. 그런 존재는 필요없다!”하면서 소리 소리 지르면서 하느님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도 결국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자기의 죽음을 저주하고 죽었습니다.

 

그러한 그 사형수의 죽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참으로 울적한 마음으로 세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곧이어 네 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신자 교도관이 저에게 “이번 네 번째 사형 집행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영세한지 3개월됩니다. 제가 대부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교도관은 아주 열심히 재소자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으며 대자도 수백명 두었다고 합니다.

“신부님 사람 죽는 것 보셨지요. 제 대자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야 되는데… 기도해주십시요.”

 

네 번째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절차를 다 끝내고 똑같이 “마지막 할 말이 없느냐”하는 집행장 질문에 그는 고개를 들고 단상 위를 치켜보다가 사제복을 입은 저를 보더니 “저 신부님을 제 앞으로 오시게 해주십시요.”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앞으로 내려갔습니다.

“신부님 마지막으로 고백성사를 보겠습니다”

 

1분이 지나 2분이 지나도록 그 네 번째 사형수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떨리는 목소리로

“신부님 고백성사를 볼 수가 없습니다. 떨려서 안되겠습니다. 난 영세 받은 지 석달밖에 안 되었고 의향으로 불렀으니 고백을 안 해도 되겠습니다.”

“정말로 회개하시고 이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께서도 용서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체 영해를 주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난 후 그 사람은 저의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았습니다.

 

1-2분이 또 지났습니다. 집행장이 몇 분을 더 기다려주더니 “신부님 그 사람의 손을 놓아주세요. 시간이 없어 빨리 집행해야 합니다.”

그 후 한 3분이 지나 제가 손을 놓았고, 죽음 직전에는 “신부님, 대부님,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행히 그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도 부르지 않았고, 살려달라고 발버둥도 치지 않았습니다.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영한 그가 숨을 거두자 진중하게 지켜보았던 교도관 대부가 저한테 와서 “신부님 잘 되었습니다. 우리 대자가 저렇게 마지막으로 잘 가길 기도했는데 하느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얼마가 지났을 때 마지막 다섯 번째 사형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사형수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작은 창문을 통하여 보여지는 감옥으로부터 사형 집행실까지는 불과 200m박에 안되었지만, 20-30여명의 교도관들이 줄을 맞추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4명의 사형수들은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순간부터 소리 소리 지르면서 “난 안돼요!”그랬는데, 다섯 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다시 신자 교도관이 다가오더니

“신부님, 저 사람은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저 사람은 교도소 생활을 10년을 했으며, 이미 3년 전에 세례를 받아 신자로써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수도자처럼 살았습니다. 저 사형수 때문에 많은 재소자들이 세례를 받았고, 사형수들 중 3분의 2가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였습니다.”라고 저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감옥문이 열리면서 그가 나오자마자 자기를 호위한 30여명의 교도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앞의 네 사람하고는 감히 비교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요. 그동안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저는 지금 떠나지만 후에 뵙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저 사람이 사형수인지 김포공항에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인지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윽고 그가 사형실로 들어왔습니다. 역시 그에게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언젠가는 오늘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준비해놓은 유서를 읽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유서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었기에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지금 그대로 이 자리에서 전해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도소에 와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저는 조금 후에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저는 저의 죄과로 죽어 마땅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하시고 하느님 나라로 불러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저는 죽어갑니다. 이제 제가 죽는 순간 하느님 앞으로 갑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제가 잘못한 모든 죄를 모든 이들에게 사죄드립니다.

끝으로 사형수의 주제넘은 말 같지만 저의 죽음을 지켜보시는 여러분께서도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시려거든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요.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제가 하느님을 만난 후부터 가장 소중하게 가졌던 이 기도서를 저의 중 3 딸에게 유산으로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잠시 후 운명하거든 저의 두 눈을 빼어서 실명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그분은 유언을 마치고 저를 불러서 지난날의 죄를 고백하는 고백성사를 보았고, 제가 성체를 영하여 주었을 때에는 그가 법으로 입증된 사형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이미 가있었던 천사의 얼굴이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체를 영하고 나서 마지막 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그를 묶게 되었습니다. 손과 다리, 발목을 묶어 들어서 형틀로 옮기는 도중에 잠깐 기달려 달라고 하더니 “포승줄로 묶여있는 내가 손으로 무엇을 꺼낼 수 없으니까 꺼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교도관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내 보니 묵주였습니다. 손에 합장을 하더니, 묵주를 손에 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교도관이 손에 묵주를 감아주었습니다.

“됐습니다. 진행하십시오.”

죽기 전에 그는 “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요”하고 3번 큰 소리로 외치면서 조용히 운명을 했습니다.

 

그가 숨지자 사방은 조용해졌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참관인들, 교도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시기에, 가톨릭 신앙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 당연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길이지요,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우리의 삶이란 어쩌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 기나긴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떠날 수 있었던 마지막 사형수의 죽음을 묵상해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조차 감사할 줄 모르고 있는 나를 반성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매 순간의 소중한 삶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은총을 구해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사랑 안에서 모두들 좋은 날들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원균(바오로) 몬시뇰님의 글

 

 

이렇게 신부님의 글을 읽고서 나에게 마지막 사형수의 모습을 전해준 교도관의 이야기도 위의 5번째 사형수와 너무 흡사하여 그분의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나 또한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지금도 38선은 그어져 남북의 이상 개념이 틀려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렇게 한 나라 안에 다른 정치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의 모습은 똑같이 하느님 안에서 소중한 한 인간의 사랑의 개체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 이렇게 민주주의 나라에서 자유로이 신앙을 고백하며, 또 새날이 밝을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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