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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봄은 늘 가슴 속에 미처 말하지 못하고 오래오래 키워온 아름다운 꽃망울들을 터뜨리며 온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시련이 많았기에 어느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봄의 기척이 느껴지며 셀리의 시가 떠오른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새 생명을 주어라

그리하여 부르는 이 노래의 소리로

영원의 풀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나의 말을 인류 속에 흩어라

내 입술을 빌려 이 잠자는 지구 위에

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쳐라!

오, 바람아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그 유명한“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구절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란 시의 맨 마지막 구절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가 등장한다, 서풍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의 온화한 산들바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사람의 자유를 억누르는 세상의 상징을 겨울이라고 지칭했고, 봄은 아무 구속이 없는 자유를 누리는 세계를 상징한 셈이다.

   우리 동네에도 어느덧 목련꽃들이 여기저기에서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봄을 돋보이게 하는 보랏빛 목련꽃을 보면 왠가 황홀해지면서도 그 꽃의 한없는 아름다움의 정기마저 느껴지며 아주 경건한 마음이 되곤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봄의 여신들을 맞는 시녀라도 된 듯 이 황홀한 계절 앞에 공손히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제일 첫 번째로 공손히 맞고 싶은 내 생애의 봄의 여왕, 그 아름다운 여신은 단연코 나의 엄마일 것이다. 그렇다. 나의 엄마에겐 고고한 여신 같은 포스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 시대에도 스키와 수영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매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미모와 카리스마와 지성을 모두 갖추셨다. 그러나 엄마는 정작 자신의 외모에 관심조차도 없으셨다.

   나의 두 번째의 여신은 말할 것 없이 막내인 나의 동생이다. 형제자매 중엔 동생이 가장 엄마를 많이 닮았으니… 하지만 나의 동생 역시 외모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 동생은 스스로를 가꾸지 않는 여인의 표상이라 할 만큼 평생 화장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나 혼자 절망한 시녀처럼 그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아름다운데 왜? 자신이 아름다운 걸 모르느냐?

   -아니, 왜 나에겐 그런 미모가 없느냐?

   -자신의 외모에 대한 무관심은 죄악이다! 오만이다!

   라고 항의 하곤 했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 동생은 이미 자신의 삶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게 많이 있다”고.

   사실, 동생은 희생으로 점철된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는 시 구절처럼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딛고 일어나면 따스하고 행복한 날을 맞게 된다지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꼭 찾아와야 할 그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지 않는 삶이 대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 역시 한 번도 온화한 봄바람을 만끽해 보지도 못하고 겨울의 혹독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엄마가 살아냈던 삶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려온다.

그러나 아무리 끈질긴 북풍이 몰아와도 나의 여신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그런 여신들에게 내가 감히 아름다움 운운하고 있다니…

   그래도,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안타깝다. 아무튼 자신의 미모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난 외출하기 전에는 꼭 거울을 보는 습관이 있다. 얼굴이 단정한 지를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자고 일어난 얼굴은 되도록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의 안과 밖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들은 자신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도 믿고 있다. 어찌됐던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한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의 경국지색이란 말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왜 아직까지도 역사가들에게 회자되고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역사 속의 아름다운 이들이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파워를 부리던 신화는 듣기만 해도 신바람이 나지 않는가?

   나는 늘 항의하곤 했다.

   -아름다운 게 뭐 어때서? 이왕 그렇게 잘 타고 났다면 말이지.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얼굴과 표정을 간직하는 법이라고.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엄마와 동생의 아름다웠던 모습은 그야말로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나의 엄마와 동생의 삶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오지만, 셸리의 시가 말해 주듯 인간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며 각자의 혹독한 겨울과 봄을 가슴속에 지닌 채 살아가게 마련 아닌가? 시련 속에서도 언젠가는 찾아올 자신이 꿈꾸는 자신만의 봄을 기원하면서… 

  

오, 바람아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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