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므로 들리는 것
<츠지이 노부유키>
나이가 들면서 어쩐 일인지 눈물이 많아집니다. 걸핏하면 울컥합니다.
가령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 합창을 들을 때, 고흐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글을 읽을 때, 어머니에 대해서 쓴 좋은 시를 읽을 때,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지는 걸 느낍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일이 적지 않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노회찬 의원 영결식을 보면서도 울컥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추도사를 들으며 콧날이 시큰하더군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사람으로 만나기로 해요.”
무슨 정치적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울컥한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좋은 사람으로 살지 못한 지난날들이 심히 부끄러워지고, 다음 세상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현상은 호르몬 작용 탓이라고 의학적으로는 설명하는 모양인데, 꼭 나이 탓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마음을 흔드는 감동 때문이겠지요. 감동이야 말로 예술의 핵심입니다만…
생각해보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건 쑥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일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 겸연쩍기는 하지만, 마음이 정화되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막에 살면서 잠시나마 축축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죠.
아무쪼록 살면서 더 자주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샘이 터지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일본의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의 연주를 들으면, 울컥하며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제13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공동 1위를 차지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러니까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건반이 어떤 색인지도 모르는 채 연주를 하는 것이죠.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감격으로 일본이 떠들썩했습니다. 거기에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까지 더해졌으니 큰 감동이었죠. 참고로 이 대회에서 우리의 손영음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츠지이에 대해서는 <밸리 코리언뉴스>에 이미 소개된 바 있습니다. 위진록 선생님의 수필 <어머니의 얼굴>을 통해서였는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신 분도 있더군요.
솔직히 저는 이 청년이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잘 치니까 국제적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겠지요.
가령, 츠지이의 연주와 조성진의 연주를 비교해가며 들어보기도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소리만 듣고 판단할 만한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소리는 조성진의 연주가 훨씬 영롱하고 정확하고 매끄러운 것 같고, 이에 비하면 츠지이의 연주는 뭔가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들리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그런 불가사의한 울림이 가슴을 때립니다. 감동이지요.
츠지이의 용모는 결코 잘 생겼다고 할 수 없고, 연주하는 모습도 어딘가 불안정합니다. 더구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는 단원들과 독주자의 호흡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츠지이는 지휘자나 연주자를 볼 수 없으니, 지휘자의 숨소리를 통해 음악적 색깔을 잡아내며, 그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한답니다. 그러니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답답해 보이지요.
실제로, 클라이번 콩쿠르의 지휘자 제임스 콘론 역시 츠지이가 지휘자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을 듣고, 보통 때보다 숨소리를 크게 냈다고 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감동적입니다. 왜 그럴까?
음악은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츠지이를 알고 연주를 들으면 다르게 들립니다. 베토벤이 청각장애인이었기에 음악이 더 진한 것처럼…
더욱 주목할 것은 보이지 않으므로 들리는 그 무엇입니다. 연주도 그렇지만 그가 작곡한 곡을 들을 때 그런 울림이 강합니다. 츠지이는 얼마 전부터 작곡에도 열중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쓰나미 희생자를 위한 엘레지 같은 곡도 작곡했고, 영화음악을 작곡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야말로 가장 시각적인 예술인데, 보지 못하는 사람이 거기에 음악을 입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거기서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으므로 들리는 것의 힘을.
그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운 것은 부모의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아나운서 출신이었습니다. 장애인 아들을 위해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형편이었던 셈이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도와주면서 무조건 칭찬했고, 아버지는 엄격하게 교육했다고 합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더군요.
“물론 자랑스럽지요. 하지만…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아무개라고 불리고 있는데, 하루 빨리 앞의 수식어 없이 그저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로 평가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어머니의 사랑은 좀 다릅니다.
두 살 때,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는 정식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보지 못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도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감성을 길러준 것이지요. 아나운서 출신의 어머니는 그곳에 전시된 갖가지 그림의 모양, 색채, 인상을 아들에게 설명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불꽃놀이에 데리고 가서 군중 속에 서서 하늘 위 폭죽의 화려한 선과 빛과 움직임을 아들 마음에 새겨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은“어머니를 통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즐겼다”고 말하며, 충분히 행복하다며 웃습니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포츠도 좋아하고, 수영과 스키도 즐깁니다. 더 많이 경험할수록, 뮤지션으로서 긍정적인 영감을 더 많이 받게 되거든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머니의 설명을 통해 그의 가슴에 새겨진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이 그의 음악에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요?
위진록 선생의 수필 <엄마의 얼굴>은 이렇게 끝납니다.
“밴 클라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고 귀국한 노부유키는 딱 한 번만 눈을 뜬다면 먼저 무엇을 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서슴없이‘어머니의 얼굴’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어머니는‘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광경을 생각할 때 츠지이 노부유키의 경우는 음악과 인간관계에 있어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겠다.”
눈물 나는 이야기지요. 노부유키가 가슴속에 소중하게 새겨놓은 어머니의 얼굴은 실제의 모습과 어떻게 다를까요? 그 두 얼굴 사이 어디쯤엔가 예술의 본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감동이 많은 나날이기를… 음악이건 책이건 영화건 무엇이건 좋습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감동의 눈물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영혼을 씻어주니까요.
아, 가을이 오니 더위도 물러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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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이 노부유키
1988년 동경에서 태어나, 95년 전 일본 맹인 학생 콩쿠르 기악 부분 피아노부에서 1위를 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츠지이 노부유키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온 몸으로, 음악으로 세상을 느끼면서 직접 작곡도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츠지이 노부유키의 연주를 들은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주는 성스러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