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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피로를 날려버린 정상의 경치 Mt. Lowe          

 

김찬호 <밸리산악회> 대원  

산행가이드_Mt. Lowe1.jpg

몇 년 전 한국 어느 대기업의 임원들의 필독서로 정해져 산악계에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산에다 생애를 바친 한 산악인의 불꽃같은 삶의 흔적이 시공을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진한감동을 주는 불후의 명작, 전설적 산악인 헤르만 불의 “8000 미터 위와 아래”이다. 

   이 책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6m)를 인류최초로 무산소 단독 등정한 기록이다. 등반사적으로 볼 때 이 산이 지닌 의미는 각별하다. 세계최고봉은 에베레스트지만 산중의 산은 K2와 낭가파르바트라고 한다. 인류가 히말라야에 첫 문을 열었을 때 첫 희생자를 낸 무대가 낭가파르바트이며 그 첫 희생자가 근대 알피니즘의 창시자인 머메리였다. 그때부터 1953년 헤르만불의 첫 등정까지 무려 31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산이다. 

   우리에게는 2009년 이산을 등정 후 하산하다 추락사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의 비극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산의 정상에 올라“헤르만불이 초등한 이산에 올라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남긴 게 죽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불은 1924년 오스트리아 산악도시 인스부르크에서 태어나 운명처럼 산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알프스 전 지역의 수많은 빙벽과 암벽을 겨울철과 야간 단독등반 등 힘든 조건만을 골라 섭렵해 나가며 23세가 되기 전 알프스 134개 봉우리에 오르는 경이적인 등반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1953년 독일, 오스트리아 낭가파르바트 합동원정대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등반도중 기상악화로 원정대장이 철수를 명령하고 동반자마저 포기한순간 그는 죽음을 각오한 결단으로 단독등정에 나선다. 악전고투 끝에 그가 정상에 선 것은 7월3일 오후 7시. 되돌아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만 캄캄한 밤에 하산을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젠 한 짝이 사라져버려 더는 내려갈 수가 없다. 정상부근에는 앉아 쉴만한 공간조차 없다. 그는 꼿꼿이 선채로 비박에 돌입한다. 세계등반사상 가장 유명한 죽음의 비박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등정 41시간 만에 귀환한 그의 얼굴이 출발할 때의 29세 청년의 모습에서 70세 노인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헤르만불은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4년 뒤 1957년 히말라야 초골리사 등정 중 안개 속에서 추락사한다. 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산가브리엘 산맥군의 Mt Lowe는 태평양과 남가주 경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그 경치에 반한 사업가 Lowe가 1800년대 후반 사재를 털어 Mt Lowe 정상 아래까지 관광철도를 건설한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그의 진취성이 참으로 놀랍다. 주차장부터 제법 가파르면서도 숲이 우거져 시원한 등산로를 2마일여가면 Mt디스어포인먼트와 샌가브리엘픽이 갈라지는 새들이 나오고 다시 1마일 더 가면 샌가브리엘 정상에서 엔젤리스 포리스트의 고봉들을 한눈에 보게 된다. 

   다시 뒤돌아 왼쪽으로 산허리 끼고 1마일을 내려오면 이튼 새들을 만나고 Mt Lowe 방향 표지판으로 가노라면 평소 산행에서 보지 못하던 Mt Wilson, Mt Lowe의 뒤편계곡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코스를 걷게 된다. 정상의 경치는 명불허전이라 했던가. 또 하나, 평소 힘들어하며 올라와 머리를 비우게 하던 인스피레이션의 정자를 바로 눈앞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은 덤으로 얻는다.

 

   산가브리엘픽(6161ft) Mt Lowe(5603ft). 왕복;9마일. 난이도;3. 등급;4(최고5)

   가는길;210(E)-2Hwy(N)-Switzer Picnic지나 Red Box를 만나면 우회전0.5마일 가면 오른쪽 주차장. 

   <밸리 산악회> (213) 445-1280  www.valleyhik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