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정 병규 / 광고디자이너 , 소설가
필자가 알고 피부로 느꼈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뿐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초등학생이었고 대통령이 서거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왔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30여 년 동안 조국을 지켜보면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 수 있게 터전을 마련해주신 분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게 만든 것이 제일 큰 업적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을 발전시켰고 중동 건설에 뛰어들어 외화를 벌어들였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었고 물류 소통이 원활하게 되어 수출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오로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일들을 하셨다.
우리가 어릴 때는 끼니를 거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소고기는 제사 때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고 흔한 달걀도 생일날에야 먹을 수가 있었다. 70년대에 들어서서 농산물들이 풍부해져 먹는 것만큼은 배불리 먹게 되었다. 또한 사회 기풍을 바로잡기 위하여 부정 축재자들을 감옥에 보냈으며 퇴폐 영업을 하는 환락가를 폐쇄하였다.
국민들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렸고 군부 통치 시대라 조금만 잘못해도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범죄도 없었다. 그래서 인권 탄압이니 독재니 하며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었고 그런 면은 있었다고 인정을 한다. 필자도 경찰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은 장발이 유행이었는데 퇴폐 사상이라 하여 머리를 잘리었던 기억이 있다.
자주국방의 기틀도 세웠다. 군인 출신이라 누구보다도 반공정신이 투철했고 북한의 남침에 철저하게 대비를 하였다. 힘이 없어 나라가 빼앗겼고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마저도 갈라진 상태에서 자주국방은 무엇보다도 필요했을 것이다.
나라가 좀 살기가 윤택해지자 밑에서 권력을 잡고 지내던 각료들에 의해 장기집권의 꿈을 꾸며 유신체제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아졌고 정계, 학계, 종교계까지도 들고 일어났다. 이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은 어이없게도 부하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다음 세대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편안한 노후생활을 누려야 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군사정부가 들어섰지만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민주투사였던 분들이 다음을 이었으나 인권만 좋아졌을 뿐 훌륭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였다고 혹평을 한다. 어느 시대에나 반대하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있고 희생은 따르기 마련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면 굶을 수밖에는 없는 일이 아닌가.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던 것 같다. 부인도 먼저 총탄에 돌아가셨으며 그리고 지금,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구속이 되었으니 무어라고 할 말을 잊게 만든다.<*> (chung52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