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만든 협곡의 파노라마 그리고 콜로라도강 - 그랜드캐년 트레킹
김찬호 <밸리 산악회> 대원
그랜드캐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전 세계인이 가장 가고 싶은 명소 1위로 늘 정상을 지키는 이곳은 아리조나주에 있으며 미국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신비로운 곳으로 1600Km 의 깊은 계곡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을 사이에 두고 사우스림과 노스림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을 예찬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력으로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만 한해 600만 명에 이를만큼 대단한 명소이지만 그 많은 방문객중 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랜드캐년 트레킹에 도전하는 사람은 한해 2~3만 명에 불과할 만큼 특별한 경험이다.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사우스림에는 2개의 트레일이 있는데 South Kaibab Trail 과 이번에 선택한 Bright Angel Trail이 있다. 그랜드캐년 트레킹은 산 밑에서 시작해 올라가 정상을 찍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는 일반산행과 반대로 내려갔다가 강바닥을 찍고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부 오르막길로(4700피트)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그 인고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랜드캐년의 밑바닥까지 걸어보고 싶다는 오랜 열망이 더 컸으리라.
새벽잠을 깬 숙소를 나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다소의 긴장감으로 배낭과 등산화를 조이며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헤드에 선다. 새벽의 여명에 어둠의 장막을 걷고 깨어나는 그랜드캐년 협곡 구석구석이 붉은 홍조를 띄고 있다. 절벽을 깍아 만든 Upper Tunnel을 지나며 시작을 실감한다. 0.8마일지점, Lower Tunnel을 통과한 후 스위치백 구간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랜드캐년의 장관은 단연 일출 일몰시의 모습이다. 여기서 만큼은 태양은 조연이다. 태양의 빛에 반사되어 시간대별로 변화해가는 협곡의 모습. 그 장엄한 파노라마에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해돋이에 몰입한 대원들의 고요한 표정들에 경외감이 가득하다. 3마일지점 Rest house 의 서늘한 아침 공기 속에서 샌드위치를 씹으며 그 여운을 음미한다. 연대순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지층대의 협곡 가장 위쪽은 2억7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고 가장 아래쪽은 12억년에서 18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니 Trail 한 굽이 돌때마다 1억년씩 밟아 내려가다 수십억 년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신비한 느낌에 잠시 멍해진다. 그렇게 한 구비 구비 돌아 내려온 길을 돌아보면 조금 전 떠나온 그곳이 시공을 초월해 딴 세상인 듯 아득해 보인다.
출발 3시간여 후, 4.5마일 지점 절벽지형에서 평탄한 지형으로 바뀌고 숲지대가 나타난다. 하바수파이 인디언들의 거주지였던 인디언 가든이다. 이지역의 오아시스. 달디 단 약수물로 숨을 돌린 후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강 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더워진다. 고도가 낮아지고 협곡에 갇힌 복사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온도가 상승한다. 긴 트레일과 더위에 지쳐갈 때 쯤 8마일 지점, 드디어 콜로라도 강을 만난다. 저 위대한 자연의 역사를 만든 에메랄드빛 거대한 콜로라도 강의 위용에 압도당한다.
콜로라도는 붉다는 뜻의 인디언말로 황토빛 물을 의미할 만큼 오늘같이 맑은 에메랄드 빛 강물을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란다. 차가운 강물에 지친 발을 담그고 영겁의 세월을 흘러온 강물에 티끌 같은 내 욕심 또한 씻겨가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저 멀리 4700피트 높이 8마일을 헐떡이며 올라가야할 길이 우리 앞에 있다.
내려오면서 그 긴 Trail을 다 거쳐 왔기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곳곳에 붙여져 있던, 당일치기로 바닥까지 내려갔다 오는 것을 삼가하라던 경고문의 실체를 올라오면서 실감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을 견디어낸 자신과 겸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땀흘린 경험에 감사한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나는 이 길을 기꺼이 다시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그랜드캐년을 보지 못한 인생은 비극 이라고. (213) 445-1280, www.valleyhik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