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음악에서 3중주곡은 3대의 악기가 대등하게 조화를 이루며 연주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중 가장 보편적인 형식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피아노 3중주곡입니다.
하이든은 30여 곡의 피아노 3중주를 작곡했으며, 모차르트는 3중주곡 형식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베토벤에 이르러서는 유명한 “유령 Ghost”과 “대공 Archduke” 이 있으며, 슈베르트의 트리오 작품에 이르러 꽃을 피웁니다.
현악 3중주곡은 보통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편성되어있는데, 하이든이 작곡한 20여 개의 3중주 작품은 2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로 되어 있으며, 보케리니, 모차르트, 베토벤의 현악 3중주곡이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3중주 곡은 오케스트라가 추가된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인데 “발트시타인”,“열정”등의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무렵인 1804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근대 악기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독주 악기로 쓰고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붙인 형식, 이런 형식은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 이라 하는데, 베토벤은 이 복고풍의 형식으로 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즉 가장 근대적인 악기와 고전 형식이 어우러진 작품이며, 베토벤만의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중주만 해도 벅찬 작업인데,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추가 되다 보니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베토벤의 곡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또한 로맨틱한 선율의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위대한 악성 베토벤보다, 인간 베토벤의 따뜻한 인간미가 풍기는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호흡의 일치를 위한 세 연주자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세 사람의 독주자에게 이 협주곡은 만만치 않은 부담을 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명반 삼중 협주곡의 음반이 많지 않습니다. 독주자 3명의 기교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베토벤이 들려주고자 했었던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듣는 이에게 감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녹음이지만 리히터, 오이스트라크,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고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의 연주가 명반 중의 명반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3중 협주곡을 작곡할 당시 비록 베토벤의 전성기였지만, 귀족과 평민의 차별…이로 인해 사랑하는 연인과의 실연,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청력 상실로 인한 절망감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3중협주곡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1악장은 아주 어둡게 시작합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어려운 일로 고뇌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베토벤 특유의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 내며 2악장에는 마치 참빛을 찾아가는 밝은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3악장에는 밝은 빛 속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은 내면의 욕구에서 이 아름다운 곡을 작곡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받은 참담한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 2악장 라르고가 부드러운 첼로 음을 시작으로 저의 마음을 녹일듯이 감미롭게 흐릅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듯한 첼로의 부드러운 음률 속에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가 지그시 눈을 감고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이 저의 눈앞에 스쳐 지나갑니다.
이 음악이 흐르고 있는 짧은 순간만이라도, 욕심으로 인한 세상의 모든 짐은 물론 그리운 사람을 향한 연민, 그리움 그리고 애증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