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창 시절 때 폴 모리 악단 (Paul Mauriat and his orchestra) 연주를 즐겨 들었습니다. 대표 곡이었던 ‘Love is Blue’도 좋아했었지만, 여름날의 세레나데 (Serenade to Summertime) 를 특히 즐겨 들었습니다. (Youtube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한여름, 조용하고 여유로움이 있는, 푸른 하늘 위에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고, 녹색의 신록으로 눈이 부신, 한가로운 여름날의 오후가 그려집니다.
1862년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망 앙레에서 태어난 드뷔시는, 9살쯤 되던 해에 마리 모테 드 플레비유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그가 음악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합니다.
그 후 11살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한 드뷔시는, 학교에서 반항아로 통했는데, 엉뚱한 일들을 저질러 교수들 사이에서 악동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로마 대상을 받은 후에도 옛 스타일로 곡을 연주하고 작곡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으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일화에, 동시대 작곡가 친구 중 말러의 4번 교향곡 초연에 초대받았는데, 이 곡이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되어 진보하다는 이유로 연주 도중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여, 말러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드뷔시는 화요회라는 예술가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당시 프랑스 예술의 새로운 조류였던 시에서의 상징주의, 회화에서의 인상주의 회원들과 깊은 교류를 하게 되고 이들을 예술성이 드뷔시의 작곡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1889년 파리에서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그곳에서 자바의 전통음악을 듣게 된 드뷔시는 이 음악에서 신선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 피아노 연주의 ‘달빛’으로 유명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입니다. 이 작품으로 드뷔시는 인상주의 작곡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그 후 1894년, 그의 걸작 중 하나이자 근, 현대 음악의 시작을 알린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발표합니다. 이 곡은 관현악으로 그려낸 인상주의 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는데, 말라르메는 <목신의 독백>이라는 시를 개작해 <목신의 오후>라는 시집으로 간행했고, 당시 그 시집에 삽화를 그린 인물이 인상주의 화가 마네였습니다.
드뷔시는 후에 이 곡은 말라르메의 시를 극히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신의 오후”에 등장하는 목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염소(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시칠리아의 초원을 배경으로, 물의 요정 님프에게 반한 목신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잊은 채 그 요정들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몽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드뷔시는 이 시를 바탕으로 음악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 해변 숲속 그늘에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목신 ‘판’은, 아련한 꿈속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몸에 금발을 한 귀여운 물의 요정이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잘 분간할 수가 없지만, 목신은 두 요정에게로 다가가 품에 안고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때, 몽롱한 관능적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그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시 밀려오는 관능적인 몽상에 잠기는 듯 하다가, 여름날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금 쓰러져 오후의 고요함 속에서 풀냄새를 맡으며 잠에 취합니다.
음악으로 그려낸 인상주의 회화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한가롭고, 느긋한 한여름의 풍경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합니다.
바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어린 시절의 정겨웠던 여름날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봄은 어떠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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