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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에는 큰 경사가 있었죠. 단순한 경사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한껏 드높여준 일이었지요.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우리의 한글날인 10월9일을 <Hangul Day>로 제정하고, 공식적으로 기념한 일말입니다. 이제부터 해마다 10월9일은 캘리포니아에서도 한글날입니다.
   한반도 밖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고, 캘리포니아주에서 특정 소수계 언어를 기념하는 날을 제정한 것은 처음일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에서 소수계 언어 기념일이 지정된 것도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하는군요. 큰 경사지요. 어깨가 으쓱 해집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한글날 지정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메릴랜드주에서는 이미 시작되었다지요.
   내친 김에 한글이 국제통용어가 되도록 힘을 모으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우리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냅니다. 현재 지구 위에서 사용되고 있는 4000여 개의 언어와 40여 개의 글자들 중 한글이 가장 우수하고 효율적인 문자라고…
   세계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보호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직지상>이고, 문맹퇴치에 이바지한 단체에 주는 상이 <세종상>입니다.

   한글은 언어학적으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면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세종대왕의 민주주의 사상입니다.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세종대왕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드셨습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세종대왕의 이런 사상을 <지식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글자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만, 한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어요. 그것도 백성들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점입니다.
   왕이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든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신하들의 결사적인 반대를 물리치고.
   반대로 글자를 말살하려 한 시도는 많았지요. 왜냐하면, 백성들이 글자를 익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고 똑똑해지면, 다스리기 어렵고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죠. 그러니 백성들이 간단하게 익혀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기는커녕, 글자를 없애버리고 싶은 겁니다. 정보를 독점해야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전제군주시대 지배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꼭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대부 양반들이 한글을 언문이니 암글 즉 아녀자들이나 배우는 글이라고 멸시하고, 한문만 쓰도록 강요한 것이죠. 백성들이 똑똑해지면 골치 아프니까요. 사사건건 따지며 기어오르면 곤란하지요. 조선시대에는 4%만 양반이고, 96%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아를 주장하면 난리가 나곤했어요. 그러므로, 지식이 공유되지 않도록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층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개인의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암흑세상이 500년 동안이나 이어졌지요.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한글>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된 겁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과 정보를 널리 공유하기 위해 한글을 만드신 겁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지식혁명>인 것이죠. 생각할수록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의 이야기가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곤 하지요. 소설가 김진명 씨가 얼마 전에 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직지- 아모르마네트>에도 직지와 한글이 지식혁명의 씨앗이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답니다. 참고로 아모르마네트는 라틴어로‘사랑은 남는다’라는 뜻이랍니다.

   또 한 가지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자긍심에 관한 것입니다. 좀 서글프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결정성 부족의 문제입니다. 스스로의 훌륭함을 모르고 지내다가, 외국에서 칭찬을 해주면 그제서야 놀라서 난리를 치곤하는 겁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글날 제정도 바로 그런 예지요. 예를 들어, 우리 2세들의 한글 교육에 대해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이 많아지는 판에, 한글날 제정 소식이 전해지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한글 찬양이 쏟아집니다.
  소설가 김진명 씨의 말을 들어보지요.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가치에 대한 자기결정성이 부족해요. 과거 중국의 승인을 기다렸듯, 밖에서 인정해줘야‘우리의 훌륭함’을 깨닫는 식이에요. 자기 나라 문화를 가장 잘 아는 건 자국민인데, 서구에서‘개런티’를 해줘야 뒤늦게 흥분해서 박수를 칩니다.”-조선일보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이런 것을 문화 열등감, 문화 사대주의 등으로 부르는데,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는 고약한 악습입니다.
   김진명 작가는 더 나가서, 인류의 지성사에서 한국인은 컨텐츠를 기록하고 전파하는데 가장 뛰어난 민족이고, 한국인의 DNA에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이 IT강국이 된 것도 그런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멋진 말입니다.
  “텍스트 뿐 아닙니다. 일관된 흐름이 있어요. 다라니경은 세계 최고(古)의 목판본이고, 팔만대장경은 20세기 불교학에서 손꼽히는 세계 최대의 기록문화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그 맥을 잇는 세계 최고(古)의 금속활자본이죠. 그 뒤에 한글이 있어요. 한글은 언어학자들이 꼽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예요. 그 전통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로 이어진 겁니다.
   금속활자, 한글, 반도체는 지식혁명의 놀라운 물결을 이끌어냈어요. 저는 이런 한국인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공감이 가는 지적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건방진 오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부심, 자신감… 그런 것 말입니다.
   유교 사상에 사로잡혔던 조선시대를 제외하면, 우리 겨레는 매우 큰 사람들이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고구려시대, 고려시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 크기와 격조를 되찾을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졸한 싸움박질도 없어지겠지요.
   그런 크고 품격 있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겁니다. <*>세종대왕동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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