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무는군요. 올해 농사는 어떠셨는지요?
농사고 뭐고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대단히 고달프니, 부디 새해부터는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해에도 조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선거가 있으니 말입니다. 조용할 리가 없지요.
누가 시끄럽고 나쁜 소리는 전혀 안 들리고, 좋은 소리 고운 소리만 골라서 들을 수 있는 특수 귀마개 같은 기계를 만들어줬으면 정말 고맙겠는데 말입니다. 그런 기계 발명하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그나저나 산불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언제 대피령이 떨어질까 조마조마 노심초사 엉거주춤… 참 못할 일이지요. 전기도 끊어지고…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산불로 애를 태워야 하니 참 심란하네요. 이처럼 잦은 산불이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더욱 마음이 어지럽네요.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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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넋두리라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아니,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네요. 누구나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올해 20주기를 맞은 아버지 묘지를 찾아가 머리 숙입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며 절을 합니다. 20년 세월 동안 묘지동판도 많이 낡았네요. 꽤나 피곤에 찌든 표정입니다.
그나마 어머니와 나란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계시고, 동생도 바로 근처에 누워 있으니 외롭지 않고 든든하시겠지 라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써보지만 별 소용이 없군요.
바람이 찹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오네요. 아버지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한데요. 아,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로군요.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거기 없어요.
잠들지도 않았어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죠.”
작자미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시(詩)에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작곡가인 아라이 만(新井滿)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아라이는 1988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지요.
이 시는 1932년 미국 볼티모어의 주부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가 지은 시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에서 유래됐다고 하지만, 그녀가 썼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전승되던 작자미상의 시를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요. 한 인디언 부족 추장의 묘석에 이 시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이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아, 아메리칸 인디언의 노래라니까 바로 공감이 되네요!
이 시가 유명해진 것은 1989년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테러로 목숨을 잃은 24살의 영국군 병사 스티븐 커밍스의 일화로부터입니다. 스티븐은 생전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라며 부모에게 편지 한 통을 남겨두었는데, 그가 죽은 뒤 열어보니 편지에 이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스티븐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례식 날, 아들이 남긴 편지와 시를 낭독했고, 그 장면을 영국 BBC가 방송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의 장례식에서 존 웨인이 낭독했고,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25주기, 미국 9.11 테러 1주기에 낭독되면서 더욱 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3년 아라이 만이 이 시를 일본말로 번역하고 곡을 붙인 뒤 자신이 직접 불러 발표했습니다. 암으로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 노래가 입소문을 타고 퍼져 폭발적 인기를 모으며, 일본의 국민가요가 되었고, 일본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사회적 신드롬이 됐다는 겁니다. 그동안 죽은 이를 위한 추모곡은 많았지만, 죽은 이가 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는 처음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라고 하는군요. 죽은 이가 산 사람을 위로한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이 바람이 돼서 내 곁에 있다는 가사는 사람들에게 위로는 물론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줍니다. 그게 이 노래의 힘이죠.”
이 노래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9년 팝페라가수 겸 성악가인 임형주가 한국어로 번안 및 부분개사하여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부터랍니다.
이후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희생자들의 추모곡으로 세월호 관련 여러 추모행사에서 이 노래가 사용되었고, 임형주는 공식 추모곡으로 헌정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음원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관련 위로금으로 기부한다고 밝히고, 그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세월호 추모곡으로 적당치 않다는 논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작곡자가 일본인이어서 저작권 수익 중 일부가 일본으로 가게 되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어쩌면, 하필이면 일본사람이 작곡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 심리도 있었으리라 짐작되는군요. 이에 대해 임형주는 추모곡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논란 때문이었는지, 그 뒤로는 김효근이라는 작곡가의 <내 영혼 바람 되어>라는 노래가 세월호 추모곡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가사는 같은 영어 시를 번안한 것이고, 곡도 내 귀에는 어쩐지 일본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하기야 추모곡이라는 것의 한계도 있겠고 가사 내용도 같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는 합니다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세상 떠난 이는 아주 까마득히 먼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니라, 바람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산 사람이 걱정되어 차마 멀리 가지 못하고 우리 주위를 맴도는 것이지요.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이 바로 어머니요 아버지인 겁니다.
나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땅속에 누우신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시네요, 나는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나르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아침에는 새가 되어 깨워주고, 밤에는 별이 되어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고…
매섭게 차던 바람이 따스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문득 우리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 했던 엉뚱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할아버지 뵈러 산소에 가자는 말에 어린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데나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시니, 우리가 힘들게 찾아가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시는 게 더 편하지 않나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저 웃었네요. 웃으면서 속으로 감탄했지요.“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 말을 핑계로 산소에 안 갈 수는 없다. 그것이 살아 있는 자의 부끄러움이다.” 그렇게 얼버무리며 또 웃었습니다.
바람이 산들산들 정겹네요. 아버지가 웃으시는 모양이로군요.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손짓하시는 것 같군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남은 이들을 슬프게 하지요.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슬퍼할 일만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장기공연된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의 명대사 몇 개를 인용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아.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정성을 쏟는 게지”
“죽는다는 건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이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야”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거야”
아마도 사랑의 예수님도 멀리 가시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시겠지, 어린 양들이 걱정되어 차마 멀리 가실 수 없으시겠지… 그러기 위해서 추운 날, 허름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두 손 모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난 무덤에도 있지 않고, 잠든 것도 아니니까요.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나는 불어오는 천 개의 바람이에요.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나는 눈밭 위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에요.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나는 여물은 이삭 위를 비추는 햇빛이에요.
I am the gentle autumn’s rain.
나는 부드러운 가을 빗줄기에요.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 hush
당신이 조용한 아침에 깨어있을 때에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나는 빠르고 높게 맴도는
Of quiet birds in circling flight.
조용한 새에요.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나는 밤에 빛나는 온화한 별이에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난 무덤에도 있지 않고, 잠든 것도 아니니까요.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나는 불어오는 천 개의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