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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인사를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지구는 돌고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옵니다. 봄이 오고, 온 세상이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세상이 어지럽고 어두울수록 큰 어른이 그리워집니다.
  길을 잃고 속절없이 헤맬 때 믿음직한 화살표가 되어주고, 마음이 못 견디게 허전할 때 든든한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는 큰 사람 말입니다. 스승, 멘토, 사부, 선생님, 지도자, 어른… 명칭은 아무래도 상관없겠지요.
  어느 시대에나 그런 어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런 어른이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어른을 모실 자리가 없는 겁니다. 정신적 여유도 없고, 겸손하지도 않으니 어른을 공경하고 모실 마음도 없는 거죠. 그저 저 혼자 잘난 줄 알면서 뒤뚱뒤뚱 살아갑니다.
  돌아보면 어른도 많고 스승도 많지요. 부모, 목사님이나 신부님 또는 스님, 선생님, 선배… 그런 가까운 사람들 말고 역사 속에서 찾을 수도 있고, 책이나 문학, 연극, 영화, 미술 같은 예술작품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요. 아이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널리 알려진 분으로, 한국의 김형석 교수나 이어령 선생 같은 이도 매우 훌륭한 어른입니다. 배울 점이 참 많아요.

백년을 살아보니
  잘 아시는 대로, 김형석 교수는 대표적인 장수(長壽) 지식인으로 꼽히지요. 금년으로 만 100세를 넘기는데, 육체적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성한 강연과 집필로 건강한 사회로 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은 특히 나이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183회, 그러니까 이틀에 한 번씩 강연을 했고, 신문에 쓴 칼럼이 60여편, 출판한 저서가 6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참 대단합니다.
  “내 나이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뿌듯한 마음을 갖는다. 무엇인가 더 새로운 정신적 열매를 남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2020년 말까지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지팡이를 짚지 않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김형석 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인생의 가르침을 전하는 말입니다. 몇 구절 옮겨볼까요.
  “백 년을 살아보고 두 가지를 깨달았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한 법이니, 나이가 들어도 놀지 말고 공부하게.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네. 스스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인생이 끝나버리거든.”
  “철드는 나이가 무엇일까.‘나 스스로를 믿고 살 만한 나이가 언제인가’를 의미하지. 60세가 되고 나니 철이 들더군. 인간의 기억력은 50세부터 감퇴하는데, 60∼75세까진 그래도 성장하지.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그때야.”
  “나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작년, 재작년의 일기를 꼭 읽어봐.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계발을 하려는 의욕이 필요하다네. 나이가 들어도 그래.”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나이가 들어도 놀지 말고 공부하라! 자신감을 가지라! 구구절절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지요. 특히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씀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죽음 앞에서 되새기는 탄생의 의미
  이어령 선생은 어떤가요? 큰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정열적으로 책을 쓰고 강연하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답니다. 따님인 이민아 목사도 큰 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지요. 육체가 소멸하기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고, 기도드리고 쓰러져서 5~6시간 있다가 운명했다고 합니다.
  이어령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지금 쓰고 있는 책이 ‘탄생’에 관한 것이랍니다. 숙연해집니다.
  이어령 박사는 평생 창조적 역발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물처럼 안겨준 대표적 지식인입니다. 한국의 지성의 큰 산맥이자, 기개 넘치는 큰 어른이지요.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생명 자본론… 등등… 그리고 최근에 주장하고 있는‘막’문화…
  막문화란 막사발, 막걸리, 막춤 같은 우리 막문화가 창조적 문화의 저력이라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 100년엔 지금까지 버려뒀던 막걸리, 막사발 같은 우리 토박이 문화와 채집 문화에서 생명력과 독창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가 열광하는 BTS(방탄소년단)의 몸짓도 정형화되지 않은 막춤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젊은이보다 훨씬 앞서가는 창조적인 발상으로 우리를 일깨워준 이어령 선생이 죽음 앞두고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내 목숨은 빌린 거였다,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지요. 인상적인 말씀 몇 가지를 옮겨봅니다. (조선일보 김지수 문화전문기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가령 이런 거예요. 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어.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라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어요.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지요.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는 없는 거라. 그래서 나는 다른 데서 힌트를 찾았어요.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동양의 탄생학과 서양의 유전학은 동시에 말하고 있어요. 뱃속에서의 10개월이 성격, 기질, 신체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고. 스승이 10년 가르친 게 뱃속에서 가르친 10개월만 못하다잖아. 그래서 지혜로운 한국인은 태중의 아이를 이미 한 살로 보는 거예요.“

▲…옛날엔 나는 약하니 욥 같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은…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안 해요. 역사적으로도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 뿐이니까. 나의 기도는 이것이에요.“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가요. 생명이 그래요.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에요.

▲…여러분도 손 놓고 죽지 말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알고 맞으세요. 종교가 있든 없든, 죽음의 과정에서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 차이예요.

▲…창을 열면 차가워진 산소가 내 폐 속 깊숙이 들어와요. 이 한 호흡 속에 얼마나 큰 은총이 있는지 나는 느낍니다.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에요.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오로지 받았다는 깨달음이에요.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잘 읽어보면 결국은 삶에 대한 교훈들입니다. 선생은 힘주어 말합니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한 순간도 되는대로 살지 말라!”

  어른을 섬겨 모시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은 더욱 중요하겠지요. 인간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그 어른이 옳다는 언행을 하고, 그 어른을 닮아가며 정서적으로 성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이 한 집안의 한 사회의 어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 스승, 혹은 멘토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꼰대가 아니라, 존경 받는 어른이 되는 일이 소중한 것이죠.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이타적이고, 부당한 권력에 대항할 용기도 있어야 하고, 유머와 융통성도 있어야 하고, 훈계보다는 잘 듣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는 진정한 어른… 너무 어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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