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1920~2010년 사이 90년간 유행했던 대중가요 노랫말의 발자취와 노랫말에 담긴 우리말과 글의 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그동안 대중가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가 열렸지만, 대중가요 앨범이나 가수가 아닌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어려운 가운데, 노랫말로 잠시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직접 가서 볼 수는 없지만, 기사로나마 우리 대중가요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가장 많이 사용된 낱말은 사랑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대중을 위해 생산되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었다. 따라서 노랫말 속에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담고 있다.
노랫말에서 사용된 단어 중 최고는 역시‘사랑’이었다. 그 다음을‘말’과‘사람’‘눈물’‘때’가 뒤를 이었다. 1920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노래 2만6000여곡을 대상으로 노랫말에 등장하는 단어들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사랑’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밖에 마음, 가슴, 세상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
노랫말에는 당대의 사회상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이다.
냬예를 들어 이난영의 부른 <목포의 눈물> 가사 중‘삼백연 원안풍’의 원래 가사는‘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고 한다. 300년전 무렵이면 임진왜란(1592~1598년)이 연상된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를 바꿨다는 것이다.
임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이 노래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임’역시 연인이 아니라‘조국의 광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어로 알려졌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리말의 표기와 발음을 미묘하게 변형한 노랫말을 슬쩍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코드로 이해됐다.
1920~1945년 이전까지는 식민 지배 아래에서 대중이 겪은 설움과 울분을 비유적인 단어들로 표현하는 시 같은 노랫말이 유행했다.
1950년 전후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7년 추정)와 미8군 쇼 등을 통해 들어온 이국적인 지명과 리듬을 섞은 <늴리리 맘보>(1957년) 같은 노랫말이 인기를 얻었다.
예를 들어 <슈샤인 보이>(1954년)의‘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라는 경쾌한 노랫말 뒤에는 한국 전쟁의 피난살이 중에 생긴 전쟁고아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대상이 감춰져 있다.
▲산업화 시대 나훈아, 남진
<앵두나무 처녀>(1956년)의 노랫말에는 먹고살기 힘든 농촌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 경제 개발에 따른 이촌향도 현상과 녹록치 않은 도시 생활에서의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한편, 1960~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고향역>(1972년) 노랫말이 동시에 유행했다.
남진의 <임과 함께>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담은 노랫말로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나훈아의 <고향역>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음을 담은 노랫말로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떠나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1970~80년대에는 포크송과 발라드가 유행하면서 <아침이슬>(1971년)처럼 삶의 진지한 성찰을 보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1987년)처럼 서정적인 노랫말이 대중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삶의 고뇌를 아침이슬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모임에서 <아침이슬>의 인기가 높아지자,‘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의 ‘묘지’라는 노랫말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아침이슬>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풀어낸 노랫말로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었던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큰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한편,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은 노랫말이 대중가요 노랫말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는 평을 듣는다.
1990년대 이후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화적 표현이 한층 자유로워지고 한류, K-pop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노래가 주목받게 되면서 노랫말의 주제와 성격도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최근에는‘나’를 사랑하고‘나’를 표현하라는 자존감과 정체성을 강조한 노랫말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