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꽃은 핀다 - 윤금숙 (소설가)

by Valley_News posted Jul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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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해 봄이 막 시작하려는 때부터 집에 감금당했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봄을 기다리며 사는 나에게는 실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올 봄에는 우리 집 뒷마당에 가득한 봄으로만 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해마다 봄이면 너서리에 가서 일년초를 사다 심고, 아침마다 커피 잔을 들고 이 꽃 저 꽃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는데… 올 봄에는 화원에도 갈 수가 없었으니 있는 꽃이나 정성들여 가꾸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친구와 꽃 사진을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나중에 서로에게 없는 꽃모종도 씨도 받아서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친구는 뒷마당에 있는 달래를 캐서 먹고 양귀비 잎사귀를 따서 쌈 싸먹고, 나물을 해먹기도 한단다. 또 깻잎, 부추 잘라서 전도 부치고 어느 틈에 자연인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양귀비 잎사귀로 쌈을 싸먹다니? 그러다가…

  마켓에 자주 갈 수 없는 이런 때에는 넓은 텃밭을 갖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우리 집 뒤뜰에도 작년에 양귀비 꽃씨를 잔뜩 뿌려 놓았더니 울타리 쪽으로 훌쩍 자라있었다. 양귀비꽃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게도 봉오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꽃이 피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나 예쁘지?’하고 잘난 척을 하는 모습이다. 마치 인간의 모습 같기도 했다.  

  고개 숙인 봉오리도 나름대로 아름다웠고, 활짝 핀 꽃은 더 아름다웠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봉오리에는 벌이 가지 않았고 활짝 핀 꽃 속으로만 벌이 바쁘게 들락거렸다. 아! 내 마음을 열어야 누군가가 다가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귀비하면 절세의 미인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중국의 여인이 생각난다. 실존인물인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사랑을 받은 미인이며, 때문에 한 나라가 파탄 난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마약의 원료이기도 해서 적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뒤졌다. 양귀비는 관상용이 있고, 마약성분이 있는 두 종류가 있다했다. 관상용은 개양귀비라고도 하며 마약성분이 있는 것은 그냥 양귀비라고 한다 했다.  

  뒤뜰에 있는 양귀비는 관상용인가 마약성분이 있는 양귀비인가 궁금했다. 

  꽃대나 줄기에 털이 없는 것은 마약양귀비이고, 털이 있는 것은 관상용이라고 한다. 뒤뜰에 있는 양귀비는 털이 부숭부숭 있으니 분명 관상용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뒤숭숭하던 말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우울증,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꽃들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묵묵히 나의 하루하루 삶을 감사하며 지내야겠다. 

  집에만 있게 되니 자연히 뒷마당에 자주 나가 화초들을 돌보게 된다. 잡풀도 뽑아주고, 장미 가지도 쳐주고 하니 날마다 새순이 예쁘게 돋아났다. 어느새 하나하나 정이 들어 사람 대신 나도 모르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제법 소통이 잘 된다.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나만이겠는가.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그동안 뜨악했던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소소한 이야기일지라도 나누며 이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야겠다. 특별히 연세 높은 독거노인들에게 잠시라도 위로의 말을 나누며 사랑을 전하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금지된 지도 여러 달이 되니,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 동안 미루어 놓았던 책장을 뒤적거리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글이 생각났다.

  “폭풍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여느 폭풍처럼, 이것 역시 재해를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폭풍은 들판을 적셔주고 하늘의 지혜를 알려준다. 그리고 여느 폭풍처럼, 그것은 곧 지나 갈 것이다. 사나울수록 폭풍은 빨리 지나간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폭풍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파울로 코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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