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저의 친구 중 한 분의 아버님이 큰 병에 걸리셨는데, 수술해도 회복될 가능성이 10%도 되지 않고, 오히려 수술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서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원하셨지만, 아들의 설득으로 수술을 포기한 후, 임종 때에 수술을 못 하게 한 아들을 원망하며 뜬 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원망하던 눈빛이 생각이 날 때마다 늘 마음이 괴롭다고 했습니다.
저의 친구 중 다른 한 분의 아버지도 80대 중반에 큰 병에 걸리셨는데, 수술해도 회복이 희박하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수술하려고 했지만, 아버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다. 자손들도 다 잘 되었고, 지금껏 복을 많이 받았다.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그리고는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눈을 감고 돌아가셨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바그너와 말러 그리고 브루크너가 활동하던 시대에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였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주로 교향시와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바그너를 잇는 독일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1896년 작곡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오디세이”에 삽입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교향시는, 그가 25세 되던 해에 알렉산더 리터의 시에 깊은 영감을 받아 1889년 11월에 작곡을 시작하여, 1890년 6월 초연된 “죽음과 변용” (Death and Transfiguration)입니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인간의 다양한 고통과 투쟁, 죽음을 통한 진정한 해방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음악화한 작품입니다.
“죽음과 변용”은 독일어로“Tod und Verklarung” 입니다. Verklarung (Transfiguration)의 뜻은“빛나게, 아름답게 형태가 변함” 이며,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17장에서 사도 세 명 앞에서 예수님의 변화 된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관현악 기법의 귀재로 널리 알려진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4개의 부분으로 작곡했습니다.
첫 번째, 라르고 (Largo): 초라한 방안에 죽음에 직면한 누워있는 병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두려움 속에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두 번째, 알래그로 몰토 아지타토 (Allegro molto agitato): 지쳐 쓰러진 병자가 삶과 죽음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사투를 벌입니다.
세 번째, 메노 모소 (Meno Mosso):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했던 순간들, 젊은 시절의 열정, 투쟁, 영광의 순간을 회고하지만, 곧 죽음과 투쟁 중에 변용이 마음속에서 교차하다가 죽음에 빠져들고, 곧 육체는 없어지고 아득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네 번째, 모데라토 (Moderato): 죽음 뒤에 펼쳐지는 빛나는 피안의 세계, 현악 군과 금관 군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변용의 모티브가 등장하고, 이어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평화로우면서도 아름다움이 가득한, 장대하면서도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안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변용의 선율 (Leitmotiv) 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 벅참과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갈 수밖에 없는 마지막 길을 만약 가야 한다면, 두 번째 친구의 아버님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빛나는 변용의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
문의 chesonghw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