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이익만 강조하고 공공의 삶을 약화시키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세계적 보건위기는 마술처럼 여겨졌던 시장자본주의의 실패를 증명했다. 모든 것이 시장자유주의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형제애와 가족애,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삶은 종종 비웃음을 살 때도 있다. 선의와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 정의와 연대는 한 번에 성취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실현돼야 한다.”
“같은 집을 공유하는 지구의 자식들로서, 동료 여행자로서 모든 형제자매들이 각자의 신념과 목소리를 갖고 꿈꿀 수 있게 해달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지난 10월4일 발표한 새 회칙에 들어 있는 내용들입니다. 회칙은 교황이 전세계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편지로, 신의 가르침을 오늘날 사회문제에 비추어 신도들이 살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총 11개의 챕터로 구성된 새 회칙에서 교황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무능한 정치와 시장자본주의 실패를 확인했다며, 인류애를 중심에 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는 말씀에 공감하고, 그 외로움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염병으로 비롯된 이상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전 세계의 사망자가 100만 명이 넘고, 미국에서만도 20만 명이상이 전염병으로 귀한 목숨을 잃었으니…
열심히 기도하면서 이제나 나아질까 저제나 좋은 소식 들릴까 기다려보지만, 기쁜 소식은커녕 미국 대통령도 감염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백악관에도 전염되는 소동이 벌어지니 참 황당합니다. 코로나를 우습게보고, 마스크도 안 쓰고, 두려워 말라고 큰 소리 뻥뻥 치던 사람이 덜컥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사실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대통령 말처럼 전염병이 별 거 아니기를, 막강한 방역능력을 발휘하여 금방 퇴치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실망이 컸던 것이죠.
우리의 불안을 요약하면,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자유 없이 갇혀 살아야 하는가, 전염병이 과연 잡히기는 하는 걸까, 잡힌 뒤에는 과연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 걸까 하는 겁니다.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니 답답한 겁니다.
의학계에는 전염병의 완전한 퇴치나 박멸은 불가능하고, 결국은 독감처럼 조심하면서 더불어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답답해지지요.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저마다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다투어 특집으로 다루면서, 각 분야에서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다룬 책이 여러 권 나왔을 정도입니다.
이런 전망에서 공통되는 의견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지구를 지금처럼 착취하고 학대해서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세상을 <신인류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오던 것들인데, 코로나 때문에 급속하게 달라지는 것들이긴 합니다만, 이 같은 총체적 변화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특히 나이든 사람들, 아날로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발등의 급한 불끄기
석학들의 진단과 전망은 구구절절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먼 산 바라보며 막연한 걱정을 하기엔 당장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심각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가 급한 형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반성도 급하고, 우리 동네와 한인사회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크지요.
우선 가장 급한 것은 경제문제일 겁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도 무너지는 구조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강제적 조치로 영업을 하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대단히 크다고 합니다. 극장이나 미술관, 공연장, 교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다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영세한 업소는 타격이 더 크고 치명적입니다. 지금은 말을 못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이 터질지… 코로나가 진정되어도 재기하지 못할 업소가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요.
그 영세 자영업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 이웃인 것입니다. 보통문제가 아니지요.
L.A. 한인사회에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한식당 몇 곳이 끝내 폐업했다는 소식입니다. 큰 식당이 이런 형편이니 작은 업소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미국사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미국레스토랑협회는 올해 총 10만개 음식점이 문을 닫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런 음식점 폐업률은 수십년 이래 가장 눈에 띄는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이런 현상은 미국 내 여러 도시의 지형을 영구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고 미국 언론은 지적합니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이 힘들다”는 신문기사가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교통사고를 전문으로 하는 한인 변호사들이 잇달아 문을 닫거나 다른 전문분야를 찾아 떠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집에 갇혀 지내는 바람에 자동차 탈 일이 줄어들고, 따라서 교통사고도 감소하고, 변호사 일꺼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디 변호사 뿐이겠나요? 자동차와 연관된 정비업소, 바디샵, 자동차 판매업소 등 모든 분야에 바로 영향을 미치겠죠. 모든 분야가가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처럼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도미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죠.
한인 비즈니스들이 문을 닫으면, 한인사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큰 문제죠.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이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전이 멈춘 상태에서 코로나 자가격리는 엄청난 타격입니다.
한인사회가 무너지면, 우리의 삶도 당연히 불편해질 겁니다. 미국사회 내에서 우리의 힘도 약해질 테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되도록 한인업소를 이용하고, 힘내도록 격려하고, 마을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하고… 등등…
석학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은 개인화와 공동체 의식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집콕 생활, 혼자살이가 길어지니까, 처음에는 답답해서 좀이 쑤시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니 뜻밖에 편한 점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현상이 강한 모양입니다.
물론 개인화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죠.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놀고… 그렇게 혼자 사는 삶, 급기야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거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고 피하는 이른바 언택트 문화가 일상화되다 보니, 그것도 나름대로 편안해진 겁니다. 재택근무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효율적이니, 갈수록 개인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형상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공동체 의식도 붕괴되고 있습니다. 여행마저 자유롭지 못하니 지구촌이라는 개념도 무너지고, 지역화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답니다.
이런 추세를 보면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이 혼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외로움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약이 있을까?
우리 저력에 스스로 놀라다
전염병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한국인의 잠재력과 저력을 확인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놀랬지요. K-방역이 세계의 모범으로 칭송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민주정신 등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월드컵 축구 응원의 열기, 촛불집회의 질서 등에 이어진 성숙된 시민의식을 자랑스러운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엽전은 별 수 없어 따위의 자조적인 생각은 이제 깔끔하게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학력도 가장 높고, 일하는 시간도 세계에서 가장 길답니다.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른 시간에 민주화를 성취하고, 눈부신 경제 성장도 이루었습니다. 거기에다 시민의식까지 막강한 것으로 밝혀졌으니 정말 대단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의 행복도는 매우 낮고, 자살율도 세계 최고이니,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정말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알고 싶네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서 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집콕하는 시간을 자신의 내면을 냉철에 응시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나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올시다.
백 마디 요란한 말보다 하나의 작은 실천이 중요한 시절입니다. 대문호 괴테가 말했습니다.
“각자가 자기 집 앞을 쓸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청결해진다. 각자가 자기 할 일을 다 하면 사회가 할 일이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