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신보다 17살이 위인 요한나과 결혼한 브람스 아버지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주로 호른이나 더블베이스의 연주에 능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고, 후에 여러 선생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브람스는, 10대 때에는, 더러운 술집에 나가 피아노를 치면서 어려운 가정을 도왔습니다.
이런 브람스에게, 1853년 연주 여행 중에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요아힘 Joseph Joachim을 만나게 되는데, 요아힘이 무명이던 브람스가 슈만 Robert Schumann을 만날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주었습니다. 슈만은 브람스를 환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작곡한 곡에 감탄하면서 그의 평론지 ‘음악 시보’에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브람스는 슈만뿐 아니라 클라라의 도움으로 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인 작곡자 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Clara Schumann과 가까워졌는데, 브람스는 14살 연상인 클라라를 죽을 때까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였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17살이 많은 어머니와 결혼한 가정에서 느꼈던 정서가, 브람스가 연상의 클라라를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라고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사실, 브람스는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슈만이 자살을 시도하고 1854년 2월 본 근처의 정신 병원에 입원하면서 브람스는 클라라와 남편 슈만의 중개자가 되었으며, 슈만 집안을 돌보았다 전해집니다.
브람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이 왜 늦가을에 감상하기에 알맞은지, 왜 그토록 애절하고 우울한지 알 수 있습니다. 브람스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생 한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 작곡가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접하고 40시간을 달려왔지만,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한 브람스는 그녀의 죽음을 누구보다 비통해했습니다. 그러고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탄식했다고 전해집니다.
클라라는 77년 생애 중 16년은 슈만과의 결혼 생활이었고, 나머지 43년 동안 브람스와 만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1896년 5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의 건강도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결국 이듬해 4월 브람스도 클라라를 따라가듯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난히도 끈질기게 더웠던 여름도, 10월 말이 가까워져 오며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져서, 가을의 문턱에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제일 먼저 브람스의 음악이 그리워지는데, 아마 브람스 음악의 정서가 계절 중 늦가을 같게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라리넷 5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4편의 교향곡, 등 … 브람스의 음악을 통해 클라라를 향한 그의 마음의 소리는, 특히 늦가을에, 브람스 특유의 고독, 체념, 애틋, 애절, 우수, 슬픔, … 을 느끼게 해 줍니다.
교향곡 3번은 1883년 12월에 초연되었으며, 지휘한 리히터는 이 곡을 '브람스의 “영웅 교향곡”이라고 부를 정도로 호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교향곡 3번 중 특히 사랑받는 3악장은, 1961년도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goodbye Again” 전편에 주옥같이 연주되어, 이 영화를 통해 3번 교향곡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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