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가 1903년 작곡의 수정을 거쳐 발표한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북반구 북쪽의 춥고 겨울이 긴, 황량하고 거칠면서도 고요한 핀란드의 겨울 정취가 물씬 풍기는 협주곡입니다.
1년 중 평균 5개월은 해가 뜨지 않고, 70여 일은 백야의 나라, 국토의 10% 이상이 호수로 이루어져 있고, 침엽수림으로 덮인,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핀란드입니다. 그런 핀란드의 정취를 가장 잘 표현한 음악가가 시벨리우스입니다.
9살 때 피아노를, 15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시벨리우스는, 헬싱키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러시아의 통치하고 있는 조국의 독립을 늘 염원하며, 핀란드 고유의 음악적 색채와 민족성을 녹여 작곡에 힘썼다고 전해집니다. 우리에게는 교향시 “핀란디아 Finlandia”로 잘 알려진 시벨리우스는, 단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작곡했지만, 독특한 개성과 서정미로 많은 협주곡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을 만큼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특성과 테크닉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시벨리우스는, 오직 바이올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기교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악기의 색깔과 미감을 가장 잘 살린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1905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지휘와 카렐 할리르 Karel Halir의 독주로 베를린 오케스트라 Berlin Court Orchestra에서, 호평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작곡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작곡 당시에 시벨리우스는, 경제난과 건강의 문제 등으로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4년 동안 이어졌던, 귀의 통증으로 인해 자신도 베토벤처럼 청력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핀란드의 국민음악가로 불리는 시벨리우스는 보수적인 작곡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유럽의 여느 작곡가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데, 아마도 핀란드의 하늘과 바람과 바다에서 얻어지는 영감, 즉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독특한 음울하고 환상적 선율과 풍성한 관현악의 울림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이 협주곡은 고전파 후기의 교향악적인 구성에다가 온음계의 불협화음을 교묘하게 혼합하여, 음울한 북구의 멜로디에 독특한 환상적인 선율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대부분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선율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시벨리우스의 2악장에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겨울의 삭풍같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정서가 느껴집니다. 아마 그의 음악 속에 넘치는 특유의 서정과 우수는, 북극과 가까운 북유럽 국가의 자연환경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피 정복국으로써 받은 억압 등에, 그 선율의 원천이 있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겨울이 되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브르흐 Bruch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스코트랜드 환상곡 Scottish Fantasy을 자주 감상하는데, 북구의 춥고 황량하면서도 고요한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음악 평론가는, 등산을 하러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사람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알프스 심포니 Alps Symphony”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LA에서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겨울에 몇 시간만 나가면, 눈 덮인 설경을 볼 수 있는 것이었었는데, 올겨울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아름답고 서정미가 넘치는 눈 덮인 대자연의 심포니를 마음속으로 느껴보시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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