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이런 새해인사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답답하고 어두운 한 해를 힘겹게 넘기고 맞는 새해이니 벅찬 희망을 가져야겠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새해 아침부터 답답한 얘기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백신에 잔뜩 기대를 걸어야하는 현실, 과연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믿을 데가 없는 공허함 등등... 온통 불안 투성이네요.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새해는 새해답고, 이 답답함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
희망의 핵심을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자신감을 갖는 일,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사는 일...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한 말 같지만, 그밖에는 달리 뾰죽한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희망을 위해 새해를 맞는 좋은 시 몇 편 함께합니다.
아무쪼록, 새해의 모든 날들이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가 드리는 인사말>
새해 인사
김현승 시인
(1913-1975)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 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 뛰듯
널 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 굴러라 발 굴러라.
춤 추어라 춤 추어라.
새해 소망을 띄웁니다
나태주 시인
날마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
그 무엇도 변한 것이 없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
그렇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 무엇도 같은 것이 없는
우리들의 하루하루
이런 것을 아시나요?
오늘은 내 생애 남은 모든 날 가운데
첫날이라는 사실!
내일 또한 내 생애
남은 모든 날 가운데 다시 한번
첫날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오늘 나는 새 사람이고 첫사람
내일 또한 당신도 새사람이고 첫사람
날마다 날마다
새사람으로 첫사람으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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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아침은
신동엽 시인
(1930-1969)
새해
새 아침은
산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 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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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
정해정 (시인, 동화작가)
새로운 해가 다시 떠오릅니다
지난해 아픔과 설움
스치는 바람결에
죄다
실어 보내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혼자서만 감당해야 할
어깨 짓누르는 무게
찬란한 아침 태양빛에
마음 적시며
다시 한 번
행복한 새날 꿈꾸며
한발 한발 걸어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