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는 소의 해다. 소띠 중에서도 흰소띠라고 한다. 예로부터 흰색의 동물이 태어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새해에도 좋은 일 많기를 바란다.
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긴 세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농경시대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내력이 강하고 신의가 두텁고 정직하며 근실한 소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황희 정승의 젊은 시절, 누렁소와 검정 소 이야기도 좋은 가르침을 준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명재상하면 황희(黃喜) 정승이 벼슬 초기시절 잠시 암행어사로 함경도지방을 돌때의 이야기다. 그 지방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소 두 마리로 쟁기질을 하는 노인을 만나는데, 다짜고짜 묻기 보다는 처음에 말을 부드럽게 붙이려고 노인을 불렀다.
“어르신! 두 마리 소중에 어떤 놈이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소를 세우며 밖으로 나왔다. 황희의 옷소매를 끌면서 정자나무 뒤로 돌아가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렁이는 일도 잘하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데, 검정 소는 힘은 좋으나 꾀가 많아 다루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황희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다시 묻는다.
“아니 어르신 그게 무슨 비밀이나 된다고 거기서 말씀하시면 될 것을 여기까지 오셔서 그것도 귀에 대고 말씀 하십니까?”
그러자 농부 어르신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저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다 안답니다. 내가 거기서 이야기 했더라면 좋다고 한 놈은 괜찮겠지만 싫다고 한 놈은 얼마나 서운해 하겠습니까.
저놈들이 어찌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랴 싶지만 나를 위해 힘껏 일하는데 그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때 황희는 노인의 사려 깊은 행동에 감동을 받아 사람을 직접 비교하는 일이 없었다.
황희는 너그러웠지만 큰일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양녕대군을 세자 자리에서 폐할 때 원칙을 흐린다고 홀로 반대하여 태종에게 미움을 사 남원에 5년 동안 유배를 간적이 있었다.
그 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황희를 불러 중책을 맞기며 황희와 화해를 시킨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승으로 발탁하여 때로는 신하처럼 스승처럼 모시고 나이가 너무 많아 물러난다고 해도 황희를 놓지 못한다.
황희와 세종은 이렇게 돈독하게 지냈으며 세종이 승하한지 2년 뒤 90의 나이로 당시에 매우 장수하며 청백리로서 모든 관리들의 모범적 인물로 추앙받고 지금까지도 명재상으로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