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강가의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은 것.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 쪽을 떼어 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세 물처럼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이고 해삼인지 반성해보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꽃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자신이 꽃을 피운 것처럼 머리 속이 환해지는 것.
쓰레기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뚱아리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한 바가지의 물을 쓰면 나 아닌 남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뒤에 첫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 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 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륵차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 서해 파도가 신안 갯벌에 음각한 나무 한 그루. <한겨레신문> 박종식 기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