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을 맞았네요. 여러분의 올해 수확은 어떠신지요? 아무쪼록 알차고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12월은 사랑과 감사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건강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전염병 탓에 답답하고 암담한 세월이 계속되었지만, 그렇다고 결실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요. 외적으로는 어둡고 막막했지만, 내적으로는 의미 있고 충실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새해부터는 전염병 걱정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하고 답답했던 올해가 저물어갑니다.
집안에 갇혀 지내고, 밖에 나갈 때도 마스크로 중무장해야 하고, 사람 만나기도 꺼려지는… 갑갑한 생활도 올해로 마무리 되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전염병과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그 나름의 슬기로운 생존방식이 찾아지겠지요. 우주여행도 하는 세상인데, 그 정도야 못하겠습니까?
잃은 것이 있는 만큼 얻은 것도 있을 겁니다. 집콕 감금생활이 이어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성찰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도 소중한 결실이지요. 또, 평소에 너무 바빠서 못했던 좋은 책 읽기, 아름다운 음악 듣기, 멋진 미술 감상, 감동적인 영화 보기 등을 마음껏 한 것 역시 알찬 시간이었을 겁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우리 옛말이 꼭 맞아요.
그런 시간을 통해서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동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나는 둔한 사람보다 빠른 사람을 좋아한다. 빠른 사람보다는 정확한 사람을, 그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용기 있는 사람보다는 나는 정직한 사람을 존경한다. 정직한 사람보다는 책임지는 사람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보다는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옳은 사람보다는 나는 착한 사람을 더 존경한다.”
마종기 시인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지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입니다.
세계적 화제를 모은 <오징어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오영수 씨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가 우리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아름다움’이란 말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회… 여러분,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 이의 말대로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름다움을 사는 착한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요. 애쓰고 또 애쓰면 못 이룰 리 없을 겁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오징어게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전염병으로 잔뜩 움추려 있는 동안 우리의 문화는 세계 무대로 힘차게 뻗어나가 대단한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한 방탄소년단(BTS)부터 <오징어게임>까지 열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문화계의 거물’이 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큰 성과를 거둔데 이어 <미나리>가 주목을 받았고, 이번에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켰으니,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지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같은 K-팝의 인기 또한 엄청나지요.대중문화에 그치지 않고 순수문학, 음악 등 각 분야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돈미 시인의‘맥아더 펠로우십’수상,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힌 한인 2세 작가 캐시 박 홍 시인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돈미 시인의 수상한‘맥아더 펠로우십’은‘천재 그랜트’로 불리는 상으로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창의력과 통찰력, 사회에 공헌할 잠재력을 가진 소수정예를 선정하여 62만 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무상투자’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캐시 박 홍 시인의 경우는 시인으로서, 아시아계 여성으로서‘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음악계에서는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참 많지요. 이제는 권위 있는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것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에서는 지휘자 김은선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샌프란시스코오페라의 음악감독에 공식취임했습니다.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이며, 최초의 아시안 음악감독이라고 하는군요.
스포츠계에선 피겨여왕 김연아,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박인비 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포츠와 문화예술계만이 아니라 요리, 패션, IT, 과학 분야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행정부와 법조계에서도 한인 2세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일이 나날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치계로 진출하여, 선거에서 당선되는 2세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요.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자랑스런 문화강국으로 우뚝 선 것입니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한민족의 우수한 재능이 국력의 신장과 함께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동안 뿌린 씨가 이제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그것도 식민지시대와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이 전쟁, 독재, 민주화 및 급속한 경제 성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면서 한국의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민하게 파고들었다. 이는 일반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 라인으로 발현됐다”
이 같은 성공은 타국땅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우울한 소식뿐일 때 들려온 소식이라 한층 더 반갑고 고마웠죠.
이건 대단히 중요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특히 우리 2세들에게는 더욱 든든한 자산이지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 2세들에게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긍심이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도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후원하는 분위기가 널리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며“나는 한국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신감이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인 겁니다. 문화는 구체적인 힘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중 문화에 대한 부분을 다시 새겨 읽습니다. 일고 또 읽고 되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