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 인플레이션 돈에 얽힌 이야기 1

by Valley_News posted Mar 03,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물가가 들먹이면서 인플레이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수준의 지속적인 상승을 말한다. 물가 수준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화폐의 가치는 하락한다. 

  통제가 불가능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超)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연간 물가상승률이 수백 %를 넘으면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라고 판단한다.

  화폐의 단위와 액면가를 보면 그 사회의 인플레이션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악명 높았던 인플레이션의 예들을 살펴본다. 

 

   ▲…초인플레이션은 주로 전쟁, 내란, 재해 등 변고가 있을 때 발생하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19~21년 사이 물가가 약 1조(兆)배 올랐다고 한다. 전쟁 중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전후 공급은 달리는데 수요가 폭증하자 생긴 현상이었다.

  1924년에는 100조(兆) 마르크짜리 지폐가 발행됐다. 세계 역사상 최고액 화폐다. 역대 주화 가운데 최고가로 남은 1조 마르크 동전도 나왔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승전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마르크화를 남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빵 1kg의 가격이 무려 5200억 마르크였다. 지폐는 종이보다 가치가 떨어져 도배지나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했다. 시장에 간 할머니가 돈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눈을 파는 사이 도둑이 돈다발은 그냥 두고 낡은 바구니만 훔쳐갔다는 실화도 있다.

 

   ▲…헝가리는 1919~24년 초인플레이션을 겪은데 이어, 2차 세계대전 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1945~46년엔 매 시간 물가가 뛰었고,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액면가의 지폐가 나오기도 했다. 역시 물자는 부족한데 수요가 늘자 대책 없이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였다.

 

   ▲…1970~80년대 중남미에서는 물가가 연간 1000% 이상 오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단위가 해마다 높아져갔다. 

  볼리비아의 경우 최고액면가가 천만 단위를 넘어서자 1987년 화폐가치를 100만분의 1로 줄이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21년 10월 1일, 자국 화폐 단위에서 0 여섯 개를 한꺼번에 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전날까지 100만 볼리바르였던 것이 이날부터 1볼리바르가 됐다. 정부가 3년 만에 다시 화폐개혁을 단행했으나 경제 위기를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베네주엘라돈가치.jpg

     -버스에 타기 위해 돈뭉치 세는 베네수엘라 시민

  베네수엘라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은 2008년 이후에만 이번이 세 번째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인 2008년에 0을 3개 뺐고, 2018년에도 10만 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만들었다.

  한때 연 백만% 단위까지 치솟았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탓에 자고 나면 화폐가치가 뚝뚝 떨어진 탓이다.

  장을 보려면 최고액권을 한 뭉치씩 들고 가야하고, 숫자에 0이 너무 많은 탓에 결제 시스템이나 기업 회계 체계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외신에 따르면, 화폐개혁 전에 2리터짜리 탄산음료 1병의 가격은 800만 볼리바르, 버스 요금은 200만 볼리바르, 빵 한 조각은 700만 볼리바르였다.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은 2021년 연말 기준 연 5천500%에 달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측했었다.

 

   ▲…터키에서는 지난 2001년 2000만 리라(한국돈 1만7000원)짜리 지폐가 발행됐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97년 500만 리라, 99년 1000만 리라짜리를 찍어내고도 모자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은 가히 살인적이다.

  짐바브웨는 2007년 이후로 엄청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 미화 1달러가 200억 짐바브웨달러(Z$)가 될 정도로 화폐가치가 폭락했다. 당시 짐바브웨는 그야말로 대혼돈이었다.

  계란 3알을 구입하기 위해서 1,000억 짐바브웨달러(Z$)라는 단위의 지폐를 사용해야 했다. 골프 라운드 한 번 돌고 나면 음료수값이 50% 올라 있었고, 상점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표를 새로 적었다. 휴지조각만도 못한 돈뭉치는 수레로 싣고 다녔다고 한다.

짐바브에인플레.jpg

  - 2008년 초인플레이션 당시 돈다발을 들고 있는 짐바브웨 남성

  당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보니 지폐에 유통기한을 표시할 정도였다. 화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손해이니 불편하게 화폐를 사용하는 대신 물물교환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땅에 돈이 떨어져 있어도 웬만하면 줍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의 핵심인 화폐의 본 기능이 고장 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짐바브웨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08년 8월 한달간 인플레이션은 11,250,000%이었고, 7월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231,000,000%이었다. 그후 정부는 아예 인플레이션을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짐바브웨는 무색해진 자국 화폐의 기능을 되찾고자 몇 번의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2009년 2월에는 1조 짐바브웨달러를 1 짐바브웨달러로 화폐 단위를 절하하는 화폐개혁(디노미네이션)을 시행했다.

  국가를 초토화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뒤 2009년 짐바브웨는 자국 통화(짐바브웨달러)를 포기했다.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고, 현재는 8개국의 화폐가 법정화폐로 통용된다. 

 

   ▲…한국도 이들 국가 정도는 아니지만 화폐가치 하락이 심한 편이다. 현행 유통 동전 5종 가운데 3종(1원 5원 10원)은 사실상 쓸데가 없다. 1원, 5원짜리는 1992년부터 발행이 중단됐다. 10원짜리는 공중전화나 우표 정도가 유일한 사용처인데 100원 동전을 사용하거나 휴대전화의 사용으로 그마저도 설 곳이 없어졌다. 

  반면, 일본은 1엔, 5엔짜리가 아직도 제 대접을 받고 있다. 슈퍼마켓 약국 책방 등 어느 곳에서나 1엔짜리가 필요하고 쓰임이 있다. 물건의 가격이 5엔이나 10엔 단위로 끝나기 때문에, 1엔 5엔짜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전 지갑을 따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돈 가치가 그만큼 귀중하게 느껴진다. <*>


Articles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