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유리창은 물론 문까지 박살이 나고 가게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와글와글 서로 부딪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바닥에 깔린 옷가지들을 밟고 또 밟으며, 걸려 있는 옷들을 끌어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다, 여기서는 이리 뛰고, 저기서는 저리 뛰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잔뜩 든 인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경찰차가 번쩍번쩍 불을 켜고 정차해 있었고, 정복을 한 경찰관들이 여기저기에서 서성거렸지만, 아수라장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 막을 생각 같은 건 아예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가끔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고, 상가 건물 지붕 위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 미국 언론들은 그들을 ‘지붕 위의 사나이들’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불렀다.

  1992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폭동 때, 나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 매달려 한국방송을 보고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순간, 한 아이가 화면에 가득 잡혔다. 얼굴이 까무스름한 히스패닉 사내아이였다. 네다섯 살쯤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몸을 바싹 오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가슴에 넘쳐나게 옷가지를 움켜 안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옴츠러들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스산한 바람이 나를 휩쌌다고나 할까?

  한 순간 아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그 아이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엊그제 본 듯 눈앞에 생생하다. 표정 없는 얼굴에 뻥 뚫린 커다란 두 눈망울이 유난히도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 땐, 그 어린 눈망울이 가슴 저리는 아픔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시를 썼다. 그 눈망울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어린 눈망울>

 

  가게 안은 온통 아수라장 무법천지

  두 팔 벌려 한 아름씩 옷가지 움켜잡고

  서로 부딪치며 우왕좌왕 야단법석

  눈알 부라리며 두리번거리는 인간들…

 

  깨진 유리 사이로 몸 바싹 오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사내아이 하나

  너덧 살쯤이나 되었을까

  가슴 넘쳐나게 움켜 안은 옷가지

  표정 없는 그 얼굴에

  뻥 뚫린 커다란 두 눈망울…

 

  텔레비전 화면에 언뜻 스치고 지나간

  그날 4.29의 슬픈 장면, 그 눈망울…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가슴 저리는 아픔으로 여전히 거기 머문 시선

  자꾸만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아이의 눈망울…

 

  30년이나 지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그 아이의

  자식들도 뻥 뚫린 커다란 눈망울 가졌으려나?

 

  지금, 그 아이는 30 중반의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날의 일을 기억할까? 그날은 총성까지 울리고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으니 아마도 기억에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야윈 얼굴에 두 눈만 유난히 크게 보인 건, 어쩌면 영양실조 때문일지도 모르니, 보이는 나이보다도 한두 살은 더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할 수도 있겠다.

  기억을 하건 못 하건 간에, 내가 왜 이리 깊이 생각을 하는지…….

  그날, 아이는 아마도 엄마를 따라 그 상점 안에 들어갔을 게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옷가지를 잔뜩 움켜쥐게 되었을까? 엄마가 아이에게 옷가지를 잔뜩 움켜쥐게 하고는‘너는 나가 있어’라고 그랬을까?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커다란 두 눈망울에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무척이나 선하게 보였던 아이, 엄마가 아무리 무책임했다 하더라도 나쁘게는 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예쁘고 야무진 여자와 결혼을 하여, 큰 눈망울의 아이가 둘쯤 딸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은 슬픈 눈망울이 아닌, 기쁨 가득한 눈망울이기를... <*>

봄배경_2.jpg

 


  1. 말씀 한 마디- 카잘스가 말하는 평화

    “나는 카탈로니아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스페인의 한 지방입니다만, 카탈로니아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나는 카탈로니아의 짤막한 민요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나는 이 곡을 14년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연주...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2. No Image

    나의 아름다운 여신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곽설리-

    봄이다. 봄은 늘 가슴 속에 미처 말하지 못하고 오래오래 키워온 아름다운 꽃망울들을 터뜨리며 온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시련이 많았기에 어느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봄의 기척이 느껴지며 셀리의 시가 떠오른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3. <이 사람의 말>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사랑받았는가 -60년 연기 인생, 배우 김혜자의 말말말

    데뷔 60년, 100여 편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맡으며 국민배우, 국민 엄마로 불리는 배우 김혜자(81)가 책을 펴냈다. 책의 제목은 <생에 감사해>로, 베스트셀러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18년 만에 펴낸 책이다. 이 책과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의 인터뷰 기사...
    Date2023.01.30 ByValley_News
    Read More
  4. 감동의 글: 14개의 계단

    행복이 블로그 <행복 충전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는 집은 언덕 높은 곳에 있었어요. 집 앞에 14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 결국은 죽게 되고마는 희귀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감사를 외치는 행복 -2023년 새해를 맞으며 - 소설가 윤금숙 -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은 계묘(癸卯)년 검정토끼 해라 합니다. 하필 왜 검정색일까 하고 찾아보니 한자의‘계’뜻이 검정이라 해서 검정토끼로 불린다하네요. 토끼는 예부터 우리의 정서에서 가장 사랑스런 동물로 인식이 돼 있었던 것 같습니...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6. 된장국 -시인 나태주 -

    된장국 어머님, 갑자기 날씨 쌀쌀해진 요즘 며칠 아내가 끓여주는 뜨뜻한 시래기 된장국 먹으니 어머님 생각납니다 고향의 그 나날이 비어가는 들판이, 길 모퉁이가, 언덕이, 당신의 손등처럼 까칠해져가는 고향의 나무들이 눈에 밟힙니다 고추밭과 채전밭이,...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감사 십계명 -찰스 스펄전-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영국 침례교 목사, 설교가)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8. <이 사람의 말> "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가 남긴 말들

    한국의 대표적 보수 지성인 김동길 교수(1928~2022)가 지난 10월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4세. 이어령 선생, 김동길 박사 등 시대의 어른들이 떠나시니,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며, 쓸쓸해집니다. 중심을 잡아줄 어른이 아쉬운 어지러운 세상...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9. 감동의 글: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10. 감동의 글 : 아버지의 생일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시간, 어느 순대국집에 한 여자 아이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남루한 행색, 퀘퀘한 냄새… 주인은 한눈에 두 사람이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차갑게 ...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1. No Image

    감동의 글 :얼마나 추우셨어요?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2.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

    김구 선생의 육성을 들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과 평안함이 조국의 평화와 독립을 위해 싸워주신 분들의 은혜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겨봅니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3. 천국으로 이사한 친구를 그리며 -강 완 숙-

    금년 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오랜 세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함께했던 친구는 나에게 믿음의 대선배요, 존경하는 권사님이요, 또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분이었다. 나 혼자서만 비밀스럽게 진실한 친구이며 롤...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감동의 글- <계란 후라이>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이야기

    우리 엄마의 눈은 한 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5. 천 번째 편지 -고 희 숙 -

    오늘도 우체통에서 빨갛고 파란 항공우편을 꺼내드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서 보내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섯 형제 중에 나만 혼자 미국에 와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연서(...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6. 이어령 <눈물 한 방울>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많은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눈물 한 방울>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책은...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7. 톨스토이, 행복의 여정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 톨스토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1천여명의 농노를 거느린 영지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의 어...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18. 가수 나훈아의 말 말 말

    가수 나훈아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대신에 항상 자신의 공연에서 특유의 시원한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곤 한다. 나훈아는 특유의 부산 사투리와 구수한 화법,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다. 그의...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19.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정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드골 대통령이 1970년 서거(逝去)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장(家族葬)으로 해라.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례(參禮)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라. 2차 대전(大戰) 전쟁터를 같이 누비며 프랑스 해방(解放)을...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지금, 살아있음이 행복이다

    1991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부부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끝내 죽고 말았다. 당시 75세의 남편 던컨과 68세의 아내 체이니 부부는, 자녀들의 노력 끝에, 죽은 지 2개월 뒤인 5월 1일에야 시신으로 발견...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