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계절…
어머니를 기리는 좋은 시를 몇 편 소개합니다. 읽으면서 잠시나마 축축하게 젖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이해인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어머니
박경리 (1920-2009)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였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도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이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 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깍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 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고정희 (1948∼1991)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히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萬古) 만건곤(滿乾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따뜻한 봄날
김형영 (1945-2021)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움큼 한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나의 어머님께
헤르만 헤세 (1877-1962)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신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 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 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옮긴이: 송영택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날 불렀니?”
그 말은 바람 속에 묻혔다.
“너에게 갈 때까지 아직도
험한 계단을 얼마나 더 올라야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별들을 찾아냈지만
딸은 찾지 못했다.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선술집의
마지막 남은 불꽃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