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테이블 -화가 강애자-

2022.06.02 16:14

Valley_News 조회 수:57

   30여년 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은 커다랗고 하얀 식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일을 하면서도, 틈을 내서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식탁 위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고민을 했습니다. 식탁은 낮에는 작업 테이블이었다가 저녁이면 우유를 먹는 아기와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과 식사를 하는 식탁이었죠. 식탁과 작업장의 자리다툼으로 식탁이 몸살을 앓았어요. 조금 과장하면 전쟁터 같았습니다.

  작업 공간이 부족했던 그 시절은 어느덧 흘러갔고 가족과 두 아이는 자신의 삶을 위해 내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나는 넉넉한 시간과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마음 가는대로 작업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삶의 목표, 열정, 명상, 여백, 색, 선, 텍스처, 형태, 쌀, 물, 한지 등과 고민하면서 여유 있는(?) 날들을 보냅니다.

  요즘 내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작업은 예전과 아주 다릅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작품은 점점 여백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색채도 매우 단순해졌습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는 것일까요? 그때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생각(판단)을 중지, 명상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고 작품준비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재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미 전시했던 작품 중에 <우리들>이라는 쪽 그림과 <박스 인스톨레이션>은 오래전 미국에 와서 낯선 환경과 주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만든 작품들입니다. 그 후 많은 여행을 하면서 가슴에 담아 온 재료들을 풀어내며 작업했던 <인스케이프 시리즈>, 아이를 임신했을 때 꿈을 꾸었던 태몽을 소재로 작업했던 <태몽 시리즈>가 있습니다. 

  요즈음엔 <소명과 의무>라는 제목으로, 지난 40년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들과의 균형에 대하여, 또 식탁이라는 스페이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에게 준, 하고 싶은 일(소명)과 해야만 하는 일(의무)이 차지하는 크기의 변화를 가지고 새로운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쟁터 같았던 크고 하얀 식탁은 스튜디오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림 그리는 작업장과 식탁의 역할을 하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이 많이 부족했어도 나의 소명과 의무를 균형있게 해냈던 그 시절 내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일 것입니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화가 강애자 약력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미국으로 이민.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미국과 한국에서 12회의 개인전과 미국과 동남아에서 열린 수많은 그룹전에 참여했고, 지난 30여년간 2,000여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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