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가상 인물입니다).어느 날, 선희는 교회 사무실로 나를 찾아와서 그녀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매는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지금 계획 하지 않은 아이를 가졌고, 이로 말미암아 상황이 매우 힘들고 엉망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기 원하며 지금 뱃속에 있는 아기를 사랑하기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선희의 얘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제 결정을 남자친구에게 얘기하자마자 그가 펄쩍 뛰면서 너무 화를 냈어요. 당장 가서 아이를 지우자고 합니다. 부모님께도 힘들게 말씀 드렸는데, 도무지 저를 이해해 주시지 않고 계세요. 마음이 많이 상하시고 수치심을 느끼고 계세요.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부모님들은 이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신 집사님들이잖아요. 목사님, 너무너무 무서워요. 제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선희의 심각한 고민에 대한 대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희야, 너는 분명히 옳은 선택을 하고 있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나도 알 수 없고, 또 쉽지 않을 것은 확실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희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거야.”
“목사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나는 로마서 8장 28-29절 말씀으로 갔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그 아들 예수를 더욱 닮게 하려 함이라.’
“선희 너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야. 너는 그 분께 속하였기에 하나님은 선희가 예수님을 닮도록, 이런 원치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분명히 가장 선한 것으로 역사하실 거야. 하나님의 뜻은 측량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선희를 긍휼히 여기시며 완전히 이해하신다는 거야.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고 선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엄청난 일들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선희 안에 거하시며 같이 겪고 계시기에, 비록 선희의 남자친구는 선희를 떠날지라도, 예수님은 너를 절대 떠나지 않으시며, 주님께서 비극의 십자가를 돌이켜 우리의 구원이 되신 것처럼, 지금 속해 있는 이 상황을 반드시 우리에게는 선이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위해 쓰실 것이 분명해.”
선희는 사무실을 떠났고 나는 나의 주님과 단둘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은 깨달음 하나가 내 머리를 맴돌며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아버지, 주님께서는 선희가 자녀를 지킬 수 있게 하시려고 주님의 자녀를 내어주셨군요.”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로 대 웨이드 (Roe v. Wade)’판결을 뒤집는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한 초안이 공개되면서 미국에 파장이 예상됩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우리는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낙태를 반대합니다. 우리는 입양을 귀히 여깁니다. 우리 앞에는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주님을 잘 대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창녀 어머니의 사랑을 보고 아기를 살린 지혜로운 재판을 기반으로 한 왕국을 건설하는 그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왕상 3:16-28). 이 신비롭고 긍휼을 베푸는 지혜는 은혜의 복음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혜가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한 번 더 선희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의 부모는 이제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되며, 모든 교인이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선희는 더 이상 제가 섬기는 교회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출석할 수 있는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가정 해 봅시다. 그리고 내가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의 교회를 추천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선희가 당신의 교회에 나왔고, 그녀의 임신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녀의“남자친구-아이 아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어떻게 받아드리겠습니까? 부끄럽고, 의심하는 표정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뒤에서 수군거리지 마십시오. 솔로몬은 창녀에게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거리의” 여자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이렇게 지극히 작은 자에게 우리 주님의 신비롭고 자비하시고, 그리고 나라를 세우시는 사랑의 지혜를 나타내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