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로 기억하고 있는데, 1000Khz 기독교 방송국에서 밤 10시에 하이든의 시계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오면, 기다리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명곡을 찾아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시간에 많은 음악들을 들려주었지만, 정작 귀에 익은 시그널 음악이 작곡가와 제목을 알 수 없어서, 오랫동안 궁금해했었습니다.
그 후, 성음 라이센스 클래식 음반이 시중에 나온 후에 이 곡을 구입할 수 있어서, 같이 수록되어있는 94번 “놀람 교향곡”을 거의 외울 정도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시계 교향곡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학창 시절로 돌아가 즐거웠던 젊은 날의 추억에 잠깁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1732-1809)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며, 목공의 가난한 집에서 12형제와 함께 살았는데, 부모 모두가 낙천적이어서 가난했지만, 집에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하이든이 어릴 적부터 음악의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친척 집에 보내 기초 음악을 공부시켰고, 빈의 성 스테파노 대성당에서 소년 합창단에 들어가 음악을 배웠지만, 1749년 변성기를 맞으며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고생을 하며 독학으로 작곡을 배우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포르포라 Porpora에게 작곡을 배웠으며, 그 후 귀족 집안의 실내 음악가와 교사로 일을 하며 작곡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다가, 헝가리 귀족인 Pal Antal Esterhazy 집안의 관현악 부악장으로 일을 하였고, 형이 죽자 동생이었던 Miklos Esterhazy의 후원 아래 30여 년간 충실히 관현악 단장직을 맡아 지휘와 작곡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후 든든한 후원자였던 Miklos가 죽자 그도 악단 직을 그만둔 후, 빈에서 잘로몬Salomon을 만납니다. 잘로몬은 1745년 본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오래전부터 하이든을 존경했으며, 든든한 후원자로 자청했습니다. 잘로몬은 12곡의 새로운 교향곡 및 지휘, 판권 등으로, 거의 1,000파운드를 후원을 제시했으며, 잘로몬의 권유로 런던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은 제93-104번에 이르며, 이 교향곡들을 일명 ‘잘로몬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교향곡 101번은 1794년 그가 2번째 런던을 방문했을 때 작곡한 3개의 교향곡 중 하나로, 이 곡을 “시계” 교향곡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제2악장에서 거듭 나타나는 주제를 뒷받침해주는 리듬이 스타카토의 8분음표로 시계의 초침 소리같이 느껴지는 데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바순과 맞은 현의 피치카토가 기계적인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매력적인 선율을 제1 바이올린이 노래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반주부의 리듬이 시계의 추를 연상시킵니다.
시계 교향곡은 두 번째 연주 여행 중인 1794년, 잘몬트 콘서트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두 번째 런던 여행에 하이든만큼 환영받고, 높이 평가된 작곡가는 거의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유력 신문에서는 매회 연주 때마다 작품 평을 실어, 앙코르로 열광하는 청중의 상황을 보도하는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라 전해집니다.
교향곡 101번 “시계”는 교향곡 94번“놀람”과 더불어 하이든의 대표적인 교향곡입니다. 유려하고 경쾌한 교향곡 94번“놀람”은 제2악장에서, 피아니시모 이후 갑자기 팀파니와 더불어 포르테시모 큰 음으로 연주되어 청중을 깜짝 놀라게 한 연유로 “놀람” 교향곡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곡은 1791년 첫 번째 방문에 작곡되었으며, 1972년 3월 잘로몬 콘서트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하이든은 106곡의 교향곡과 68곡의 현악 4중주곡 그리고 만년에는“천지창조”, “사계” 등의 오라트리오풍의 교회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하이든은 낙천적인 부모를 닮아서인지, 그의 교향곡은 경쾌하고, 유려하며, 밝고, 마음을 편안히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거의 매주 찾아오는 비 소식으로 조금은 우울할 때, 이 교향곡이 우울해진 마음을 밝게 추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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