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필드(1782-1801)는 아일랜드 더블린 Dublin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0세 때 이미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1793년에는 무초 클레멘티(Muzio Clementi)가 운영하는 피아노 제작소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하여 그곳에서 피아노 구입자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일을 하였는데, 일의 대가는 클레멘티의 레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1795년에는 두섹Dussek piano concerto 연주로 하이든 Haydn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17세가 되는 1799년에는 자신의 첫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했고, 그 후 스승인 클레멘티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 마침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는데, 1803년 6월에 스승 클레멘티가 떠날 때 필드는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그는 남은 생애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보내게 되는데, 여기서 러시아인 제자와 결혼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오가는 생활을 하다 결국 1821년에 모스크바에 상주하게 됩니다.
그의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암으로 고생하여 치료를 위해 서유럽을 방문하는데 런던 (1831), 파리 (1832-33),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공연하면서, 당시 유명 작곡가와 직접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건강히 크게 악화하여 1835년 가을 러시아 귀족의 도움으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되고 이때 그의 마지막 야상곡들이 작곡되었습니다.
존 필드가 그의 마지막 야상곡을 작곡하던 즈음에는, 쇼팽은 이미 초기 야상곡들을 작곡하고 있었습니다. 1832-33년, 필드가 파리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 사람들은 당시 두 사람의 유사한 연주 스타일에 혹시 쇼팽이 존 필드의 제자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의 연주에 쇼팽은 크게 감명받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자기 제자에게 존 필드의 작품들의 악보를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귀족들이나 상류층들은 이른 저녁에 식사하고 거실에 앉아 피아니스트의 생음악을 들으며 자유스럽게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 시간을 연주용으로 만든 피아노곡이 녹턴 즉 야상곡입니다.
녹턴 하면 흔히 쇼팽을 떠올리지만, 그에 앞서 녹턴이라는 피아노 소품 양식을 고안하고 연주한 음악가는 존 필드입니다. 그가 작곡한 20곡 가까운 녹턴은 쇼팽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또 쇼팽에 의해서 정교하고 세련된 피아노 소품으로 완성되어 졌습니다. 필드의 작품은 쇼팽에 비해 간결하고 밝으며, 노래하듯이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이 무척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존 필드의 야상곡들은 쇼팽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그는 쇼팽의 그늘에 가려 세상에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습니다.
존 필드의 첫 번째 3곡은 1812년에 1817년에 4~6번이 추가되고, 7번과 10번이 1821~22년 사이에, 8~9번이 1815~16년에 출판됐다. 8~9번은 처음에 "Romances"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다가 1835년에 Nocturnes로 변경된다, 그리고 나머지 곡들은 모두 1830년대에 출판되었습니다.
지금이 8월 말인데, 태풍으로 인해, 어제는 하루 종일 거세게 비가 내렸습니다. 홍수로 피해를 본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오래간만에 듣는 여름의 빗소리는, 한국의 많은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영롱한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비로 인해 어두워진 방안에서 빗소리와 함께 듣는 존 필드의 야상곡은, 쇼팽과는 또 다른, 노래하듯이 흐르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빗방울처럼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