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음악을 감상할 때, 작곡가의 의도하는 음악 세계를 느껴보기 위해 일상의 모든 생각은 뒤로하고, 음악 속에 푹 빠지려고 집중합니다.
그런데, 특히 오래전에 들었던 곡일수록,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음악 속에 빠지는 대신, 이 곡을 즐겨 듣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 있었던 추억들이 여름날의 뭉개구름 처럼 피어올라 곧 추억에 잠깁니다. 그럴 때마다 음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 어느덧 다시금 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이렇듯 추억에 잠기는 일은 꼭 클래식 음악이라서가 아니라, 오래전에 들었던 모든 음악은, 기억의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깨어나게 하는 능력(?)까지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0여 년 전, 바이올린 음, 현악기 음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던 학창 시절에, 즐겨듣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저에게는 추억의 음악입니다.
모차르트는 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3번과 5번을 좋아하는데, 아마 먼저 들을 기회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3번을 더 좋아합니다. 어떤 평론가는, 3번 협주곡이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느낌 때문인지, 이 협주곡을 산소 같은 곡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울할 때 이 곡을 듣고 나면 마음이 한결 상쾌해짐을 느낍니다.
모차르트는 1762년부터 뮌헨과 비인 등지로 연주 여행을 시작으로 1763년부터 3년간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지를 돌았으며, 1767년부터 2년간은 비인으로, 1769년부터 3년간에 걸쳐 이탈리아를 3회나 연주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행지에 따라 새로운 지식을 배웠고 작곡 기법 등을 함께 습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탈리아적인 명랑한 면과 독일적인 건강한 화성에 고전파 시대의 중심이 될 만한 기량을 겸해 배웠을 것입니다.
1775년, 뮌헨 여행에서 돌아온 모차르트는, 6월부터 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잘츠브르그에서 작곡하는데, 9월에 작곡된 곡이 3번 협주곡입니다.
그의 음악은 고귀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단정하고 아름다워 동심에 찬 유희와 색채,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창작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정한 스타일, 많은 하모니, 간결한 수법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멜로디는 음악의 에센스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율은 아름답고 풍부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의 음악의 밑바닥에는 한 줄기의 애수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수 있는데, 밝고 아름다운 음악 저변에, 생활고로 싸워야 했던 아픔이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협주곡들을 작곡하기 전까지 모차르트는 신동으로 유럽투어를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협주곡 3번에는 이국적인, 특히 프랑스 색채가 많이 묻어난다고 합니다.
이 협주곡은,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어린아이들이 협주곡에 입문할 때, 주로 연주하는 곡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만만한 곡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이 모차르트의 작품은 쉽게 연주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연주하면 또 다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리고 매번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가을은 이미 다가왔는데, 여름이 아직 떠나지 않은 가을밤이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밝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들으며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에 푹 잠길 수 있어서, 행복한 밤입니다. 밝고 아름다운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