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은 성탄절이면 떠오르는 그림이다.
권순철의 <예수님 얼굴>, 김병종의 <바보예수> 등도 떠오른다. 성탄절을 맞아 이런 그림을 보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본다.
우리 시대 한국의 종교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작가의 종교관과 예술관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가 서양의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받아들여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말해준다. 작품에 담긴 사연이나 시대정신을 알고, 감상하면 숙연해지는 부분도 많다.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박해, 그리스도의 공생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등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의 전통 풍속화로 재해석하여 파노라마처럼 화폭에 담아낸 역작이다.
예수님의 삶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하여,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조선시대 복색을 한 인물과 초가, 기와집 등 전통 가옥 등이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과감한 시각, 기독교의 한국화라는 관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미술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 중에 탄생한 성화(聖畵)로 전쟁과 종교그림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상징성이 큰 울림을 준다. 운보는 한국전쟁 중인 52∼53년 아내 박내현의 친정이 있는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이 <예수의 생애> 29점을 1년반 만에 완성했다. 나이 40세 때였다. 그 3년 뒤, 부활 그림을 추가해 30점으로 완성했다.
피난 시절의 가난과 엄혹한 환경에서, 화구도 구하기 힘든 여건에서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성화를 그리는데 온힘을 쏟았다고 고백했다.
“온 국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예수의 행적을 그려보는 것도 계기가 될 것 같아 성화를 그리는 것으로 암울한 시기를 이겨 나갔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이 85세 때 그린 자화상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이 그림의 아래쪽에는 '바보야'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는데, 이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