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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현 작가의 신작 소설집 『그림 그림자』를 탐독하며 내 마음에 담은 구절이 있다.

  “나는 요즈음 자화상을 그리려고 발버둥 치고 있네. 지나온 자취들을 되돌아보고 나는 도대체 어떤 중생인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

나 때문에 아팠던 사람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야겠지…” 

                        -<자화상 그리기> 중에서

 

  그는 자화상을 그리려고 거울을 보았다. 웬 낯선 남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지만 뉘신가요?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였던가요?” 

  이렇게 묻고는 그는 끝내 그리지 못하고 말았다고 했다.

  저자는 미술과 문학 전공자로 시집, 희곡집, 소설집, 칼럼집, 미술책 등 27권의 저서와 50여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을 ‘문화 잡화상’이란 표현을 쓰고 문인들은 그를 ‘나성 문화재 1호’라 부른다.

  천의 얼굴을 가진 광대로 그는 어떤 얼굴 모습이 그의 진짜인지 헷갈렸는지. 삶의 철학에 도달한 자화상을 그리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했는지.

 

  많은 화가는 젊어서부터 자신을 그렸다. 보이는 얼굴 안에 그들은 영혼을 담아 자화상을 그렸다.

  청년 고흐 자화상은 나를 섬뜩하게 한다. 그는 과감하고 거친 터치로 내면의 불안과 마주했다. 화가에게 내가 말한다. 

  “천재 화가님, 자학이 격해서 힘드네요.“

  렘브란트 말년 자화상에 내 눈이 오래 머문다. 붓으로 잔잔하게 그린 그림에서 균형미와 인간미를 느낀다. 그와 눈을 맞추면 연민의 눈으로 노 화가는 나에게 말한다. 

  “국화야, 참회할 시간이 많지 않아.” 

  내 얼굴이 땅끝을 본다.

  장소현 작가는 본문에서 조선 윤두서의 자화상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총구 같은 벌건 눈에서 총알이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윤두서의 표정. 한국화의 걸작으로 뽑힌다. 덥수룩한 수염의 한올 한올에서도 그의 심상이 드러난다. 당파의 벽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한(恨)의 표출인지 모른다. 글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이니 단칼 같은 빛이 보인다.

 

  젊은 시절 한때 그림을 그렸지만, 나는 자화상을 그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얼굴의 겉과 안. 지지부진한 삶에서 내 얼굴에 그림이 있었을까.

  세월은 삭풍을 동반하여 나의 희로애락도 춤을 추었다. 인생의 뿌리를 2번이나 옮겨 심으면서 생겨난 여러 풍경이기도 했다. 부부 사이의 틈은 나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혼자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가을낙엽은 낭만이 아니었다. 그때 시상(詩想)을 자화상으로 남길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는 안정기에 드는가 했다. 나의 장편소설은 2편쯤으로 끝냈지만, 단편들은 계속 생산되었다.

 

  내가 말수가 적고 시무룩하면 딸은 묻는다. 

  “엄마 또 무슨 일 있어요?” 

  세상사는 방식이 헐렁해서 돌부리에 걸리고 뒤통수 맞는 일도 생겼다. 나사들이 닳아서 그런지, 아니면 잘 맞지 않는 것을 대강 맞추어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에피소드를 달고 산다고 딸의 눈빛은 떨떠름하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때 나의 자화상도 그림이 될 만했다. 허탈한 내 얼굴에 겹겹한 우수의 그림자들.

  태생적으로 나는 동물성이기보다 이슬방울이 맺힌 식물성이다.

  꽃이라면 검붉은 장미나 보랏빛 수선화과는 되지 못했다. 내 삶은 밟아도 일어서는 잡초였다가 해바라기 같은 삶을 택하지 않았을까. 해를 따라가며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화’로 글을 쓰면서는 내 얼굴에도 글자 무늬가 그려졌다. 글자 사이로 장례식장의 노란 국화가 보였다. 죽은 냄새를 중화시켜 보라고 국화에게 말해 주는 것 같다.

  나이의 무게가 버거운 요즈음이다.

  나도 장소현 작가처럼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말을 걸었다.

  “정숙 씨인가요? 국화 씨인가요?” 

  말년에는 국화로 살기로 했으니 국화 얼굴을 그릴까. 연필을 들었는데 내가 너무 많아 어른거리기만 한다.

  정숙으로 산 세월은 프리다 칼로처럼 내 가슴에 몇 개의 못을 박았었다. 오늘 보니 생선 가시였고 흐물거렸다. 찌르지도 못하니 더 이상 가시도 아니다.

  나에게도 흘러간 자화상은 여러 개 있었다. 별로 남기고 싶지 않은 것들이기에 없어서 좋았다.

  내 얼굴은 나는 볼 수가 없기에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 작가가 말했다.

  남의 얼굴만 보고 살았기에 나에게 남아 있는 자화상이 있다.

  박경리나 박완서 작가의 말년 모습이 좋다. 같은 여성으로 거친 삶이 만나는 지점들도 많았다. 풍진 세월을 걸레질하며 버릴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그 표정을 담으면 좋겠다.

  나는 두 여성 작가를 모델로 삼았으니, 나의 자화상은 단순할 수밖에 없다.

  윤곽만 그린 국화 얼굴에 텅 빈 하늘을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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