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 외동딸 라영이는 1982년 5월생이다. 나는 8남매, 아내는 6남매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우리는 한 명만 낳아서 잘 기르기로 이미 결혼 전에 약속한 터였다.      

   아내가 출산 기미가 있어 화곡동 단골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나는 퇴근 후 곧장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와 장모님이 나보다 먼저 병원에 와 계셨다. 우리는 단산을 결정했기에 성별 검사를 하지 않아서 궁금했으나 내심으로는 은근히 아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내가 서너 번 유산한 경험이 있어 초조해서 병원 출입문 입구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중학교 동창 2명이 격려차 방문해 주었다.      

   산고로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의 비명을 들을 때마다 복도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가슴에 비수가 날아들어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아이 낳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힘든 출산을 어떻게 여덟 번이나 하셨을까? 새삼 어머니의 노고와 은혜에 고마움을 느꼈다.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어갈 때 간호사가 병실로 호출하여 들어갔더니 “예쁜 공주님이 탄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부인은 회복실에 계십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회복실에 들어가 아내의 손을 잡고“수고했다”고 위로했다. 어머니는“우리 집안에는 쓰잘머리 없는 것만 자꾸 나온다”며 노여워하셨고 장모님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죄송하다며 어머니께 곰비임비 조아리고 계셨다.      

   회복실을 나오니 그때까지도 같이 기다려 주었던 친구들이“아들이냐?” 묻길래 나도 모르게‘김샜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눈치 빠른 녀석이“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잘 됐다”고 위로하였다. 그 이후로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김샜다. 아빠! 김샜다는 잘 자라고 있는가?”라며 빈정대는 것이 인사였다. 

   퇴원 후 아내의 몸보신을 위해 우시장에 가 돼지족을 사 왔다. 그 당시는 가난하게 살 때여서 소족을 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소족을 고아서 우려 먹여야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능했던 남편이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가슴 저리다.   

   나의‘김샜다’는 잘 자라 주었다. 두 살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새벽에 기절하여, 혼비백산한 내가 안고 병원으로 달음질치던 중 의식이 깨어난 것 이외는 속 썩이거나 걱정시키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이 고맙기만 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싶어 해 옥스퍼드에 있는 사립여고에 입학시키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얼마나 훌쩍거렸는지 옆 승객들한테 핀잔까지 받았다. 저 어린 것이 엄마, 아빠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애를 물가에 놔두고 온 부모 마음 이해할 만했다.      

 ‘김샜다’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거의 10년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의관과 결혼했고 자신은 영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나에겐 귀하기만 한 손자까지 한 명 안겨주었다. 사위가“애 엄마가 자식을 한 명만 더 낳자고 졸라대도 거절하니 아버님이 압력 좀 넣어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 손자가 외로워서 안 좋으니 한 명 더 낳으라고 권유했더니“아빠도 한 명만 낳고 왜 더 낳으라고 하냐”고 반문했다.    

   나에게는‘김샜다’가 아니라 복덩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딸자식이 태어난 이후로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했고 아내가 부업으로 손댄 요식업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듯 금상첨화가 되어 부를 쌓게 되었다. 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드레스를 입히고 예쁜 모자를 씌워 나들이 데리고 나가면 지나치던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보며 단란한 가족이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지만, 지금은 딸을 더 선호하는 추세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들보다는 딸이 부모에게 더 효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딸 둘이면 금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이란 우스개도 있다. 나는‘김샜다’가 효도해 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효도이다.    

   나는 노후 대책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다.<*>


  1. No Image

    감동의 글: 어느 병원장의 이야기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까? 유난히 바쁜 어느 날, 80대의 노신사가 엄지 손가락의 봉합사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를 다그쳤다. 아직 의사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그를 돌보려면 한 시간은 족...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2. 감동의 글: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3. 감동의 글: 14개의 계단

    행복이 블로그 <행복 충전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는 집은 언덕 높은 곳에 있었어요. 집 앞에 14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 결국은 죽게 되고마는 희귀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감동의 글- <계란 후라이>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이야기

    우리 엄마의 눈은 한 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감동의 글 :얼마나 추우셨어요?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6. 감동의 글 : 아버지의 생일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시간, 어느 순대국집에 한 여자 아이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남루한 행색, 퀘퀘한 냄새… 주인은 한눈에 두 사람이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차갑게 ...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7. 간접 살인 -수필가 이진용-

    내가 60대 후반의 안씨를 알게 된 것은 Care Center (양로 병원)에서였다. 나는 천주교 레지오 봉사활동 일환으로서 그곳을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여 한국인 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기도와 함께 위문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때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8. 가수 나훈아의 말 말 말

    가수 나훈아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대신에 항상 자신의 공연에서 특유의 시원한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곤 한다. 나훈아는 특유의 부산 사투리와 구수한 화법,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다. 그의...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9. 가물가물 깜빡깜빡 -<소설가>김영강-

    “이혼이야 이혼-- 이번에 못 찾으면 이혼이야--. 진짜로 이혼한다고오--”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언제 외출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열쇠 없어진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 아냐? 한번 두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뭐? 열...
    Date2021.07.24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나무는 꿈꾸네」 - 조 옥 동 문학평론가, 시인

    며칠 전 아주 아담한 시집「나무는 꿈꾸네」를 받았다. 장소현 시인의 7번째 시집으로 겉표지엔 그의 부인 김인경 사진가의 작품, 나무로 장정(裝幀)되어 무게가 실려 있다. 이 시집에는 나무에 관한 생각을 담은 시, 이야기 시 등 몇 년 전 세상 떠난 동생을...
    Date2019.06.13 ByValley_News
    Read More
  11. No Image

    “99%, 폐암입니다” -수필가 이진용 -

    내가 60대 중반이었던 2018년 8월 중순경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었다. 직감적으로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호흡기 전문의인 주치의를 찾아가 증세를 설명하고 CT 촬영을 할 수 있게 리퍼(refer) 해 ...
    Date2024.04.03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지금, 나도 가고 너도 간다’ -수필가 이진용 -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42개국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자살 사망자의 80% 정도는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90%가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된다니 인격장애가 자살 요인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인격장...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13. No Image

    ‘김샜다’ -수필가 이진용-

    내 외동딸 라영이는 1982년 5월생이다. 나는 8남매, 아내는 6남매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우리는 한 명만 낳아서 잘 기르기로 이미 결혼 전에 약속한 터였다. 아내가 출산 기미가 있어 화곡동 단골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나는 퇴근 후 곧장 병원으로 갔...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5월은 가정의 달, 사랑과 감사의 달-조옥동(문학평론가, 시인)

    봄이 떠난 자리에 초여름이 펼쳐 있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온 집안을 꽉 채웠던 초대 손님들이 다 떠났어도 잔치마당의 흥겨움이 여전히 남은 듯 모처럼 가뭄을 이긴 남가주 땅, 동서남북으로 산과 들을 풍성하게 장식했던 수퍼볼룸, 꽃잔치의 화려함을 쉽게...
    Date2019.06.04 ByValley_News
    Read More
  15. No Image

    4월의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바라보며-조옥동 문학평론가, 시인

    어김없이 찾아 온 4월은 꽃길을 열고 푸른빛을 펼치고 있다. 4계절의 모습이 분명치 않은 남가주에 겨울부터 비가 많이 내려 7년 만에 가뭄을 완전히 벗어났다. 밸리 북쪽 랭캐스터의 앤틸롭 파피꽃 단지를 비롯 수퍼볼룸의 장관을 이루고 사방으로 달리는 프...
    Date2019.06.04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100년 전 삼일절, 그날의 절절한 외침을 기억하며...

    100년 전 삼일절, 그날의 절절한 외침을 기억하며... 3월입니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기쁨도 잠시, 3월의 첫날은 3· 1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삼일절인 만큼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1919년 3월 1일,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그날, 대한 ...
    Date2019.06.04 ByValley_News
    Read More
  17. <한글날 특집> 구품사의 눈물 -소설가 김영강-

    <편집자의 말> 10월9일은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 1443년이니, 올해로 580년을 맞습니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문화의 물결과 함께 한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한글이...
    Date2023.10.02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지혜의 글> 개코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숙종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는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가 묘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
    Date2023.06.29 ByValley_News
    Read More
  19. <이 사람의 말> 완성을 향한 열정 멈출 수 없다 -원로배우 이순재의 말씀들

    자료 정리: 장소현 (극작가, 시인) 이순재는 대한민국의 최고령 현역 배우다. 올해 여든아홉이 됐다. 구순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젊고 강하다. 배우 이순재는 구순을 앞둔 나이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열연...
    Date2023.07.28 ByValley_News
    Read More
  20. <이 사람의 말>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사랑받았는가 -60년 연기 인생, 배우 김혜자의 말말말

    데뷔 60년, 100여 편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맡으며 국민배우, 국민 엄마로 불리는 배우 김혜자(81)가 책을 펴냈다. 책의 제목은 <생에 감사해>로, 베스트셀러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18년 만에 펴낸 책이다. 이 책과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의 인터뷰 기사...
    Date2023.01.30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