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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학생의 아버지가 학교에서 선생님과의 대화 가운데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자녀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국, 영, 수를 잘해야 하는데 이 성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아이가 잘하는 과목이 있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혹시 역사 즉 히스토리과목은 아이가 재미를 갖고 있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학창 시절에 히스토리과목 그러니까 역사 과목을 잘하셨습니까? 학생의 아버지가 대답하시길 저는 학창 시절에 역사 점수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대답이“역사는 반복됩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즉 당신 자녀는 역사 점수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의 요점은 자녀의 문제는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에게서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대하면 쉽게 접근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표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의 신하라고 하면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린 분봉왕 헤롯의 신하입니다. 이정도의 사람이라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신하의 아들이 몹쓸 병에 걸린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치료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한 가정이 가능한 이유는 갈릴리의 목수의 아들에게까지 달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나사렛이란 동네에 목수 집안의 아들에게까지 가서 부탁을 하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접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지체 높으신 고관 댁 관료가 예수님을 단숨에 찾아 나섰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식의 죽어가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는 부모의 심정은 다 같을 것입니다. 그가 주님을 찾게 된 것은 자식이 죽을병에 걸린 것 때문이지만 그 아픔이 그가 주님을 만나게 된 원인이라면 그 아픔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난 신하의 요청은 이렇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요4:47)

   신하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좀 뜬금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대부분 이러한 위급한 상황이라면 아이에 대해 묻는 것이 상식입니다. 열은 있는지? 물이라도 먹을 수 있는지? 그동안 신앙생활은 잘했는지?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아이에 대해서 크게 괘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48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48절은 죽어가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죽어가는 아이보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바로 당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49절의 왕의 신하가 주님께 요청합니다.“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합니다. 주여 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아이가 죽기 전에 와야 한다고 합니다. 죽으면 예수님도 별 수 없습니다. 죽기 전에 내려와야 뭐라도 할 것 아닙니까? 이런 내용입니다. 왕의 신하가 주여 라고 왜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과 믿음의 상태를 대신해 주고 있는 문장들입니다. 입으로는 주여라고 하는데 마음으로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백부장의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이유는‘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됩니다’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정반대의 믿음입니다.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자기 아들이 있는 가버나움까지 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자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수준에서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 안에서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앙이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을 주님이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 눈이 보고 있는 곳을 주님이 같이 봐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따라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는 말 같아서 속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신앙적인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이 보고 계신 곳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 내가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보고 계신 곳을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설교는 주님의 가신 그곳을 갈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 개념에 나를 비춰보면서 내가 지금 불신앙의 모습인지 아니면 주님을 믿는 신앙인인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주님이 보고 계신 그곳을 우리 함께 봅시다. 그리고 그 길에서 기뻐하고 서로를 위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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