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우물쭈물하다 1월이 휘~리~릭 지나고 2월이 다가왔습니다. 계절적으로 춘삼월을 품고 있는 2월을 좋아합니다. 봄이 머지않았기에. 뒷마당 그늘진 곳에서 새빨간 동백이 소리 없이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얼음을 뚫고 피는 노란색 복수초는 숲속에서 자란다 하니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봄을 알리는 꽃으로는 으레 매화나 동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곳 엘에이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우리 집 뒤뜰에도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며 첫해를 맞고 또 새로운 결심도 해보게 됩니다. 동백은 추위를 견디면서 봄은 멀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줍니다. 2월 한 달 피었다가 꽃봉오리째 땅에 툭 투두둑 떨어집니다. 그래서 더 애절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벚꽃처럼 꽃잎이 하르르 흩날리지도 않고 둔탁하게 그 자리에 툭~ 내려앉습니다.   

  동백은 꽃말조차도‘겸손한 마음’이라 합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타는 듯 붉은빛을 피우다가 다른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살며시 양보를 해줍니다. 그런 모습에서 겸손과 배려를 깨닫습니다. 

  해마다 2월이면 습관처럼 책장에서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꺼냅니다. 

  ‘아~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이 구절을 읽을 때면 가슴이 벅차올라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고 만나고도 싶고 밥을 함께 먹고 싶어집니다. 

  내친김에 친구들을 초청해 이른 봄의 향연을 베풀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금년에는 이런 소소한 것에서 기쁨과 감사, 행복을 느껴 보려합니다. 

  문득 곤드레나물이 생각났습니다. 

  지난 봄, 한국에 갔을 때 동생은 한식을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곤드레나물밥 전문집으로 안내를 했었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곤드레나물밥은 향이 숟가락 위에서부터 퍼져 후각, 미각을 동시에 감동시켰습니다. 산해진미가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워낙에 나물을 좋아하는 나의 입맛에는 최고의 음식이었죠. 

  “근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나물 이름이 왜 하필 곤드레라니?”

  “바람이 불면 이파리가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린다고 해서….”

  “이름도 희한하구나. 곤드레만드레 라는 유행가 생각이 나잖니?”

  “위장에도 좋고 관절에도 좋다고 해서 요즘 엄청 유행이야!”

  마침 그 식당에서는 말린 나물도 팔고 있어 한 팩을 사왔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미니 장미와 수선화, 시클라멘, 프리지아가 새싹이 파릇파릇 돋고 있고 진보라 빛 멕시칸 페튜니아가 드문드문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가끔씩 벌새도 꽃 이파리에 앉아 날개를 파르르 떨고 있기도 했었죠.

  내게는 꽃을 좋아하고 글과 음식을 좋아하는 세 친구가 있습니다. 누군가 먼저 책을 사면 서로 돌려가며 읽고 독후감까지 나누기도 하니 품위 있게 살고자 하는 시니어라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이 모임은 서로가 진심을 다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이이므로 자칭‘지란지교’라는 이름을 붙여 보기도 합니다. 

  곤드레나물밥에다 미역국으로 식단을 짜봅니다. 그중 한 친구의 생일이기도 해서요. 엘에이에서는 흔치 않은 나물밥이어서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나 안성맞춤일 성싶습니다. 양념간장을 잘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 하니 다시마간장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듬뿍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참기름과 깨,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청양고추를 넣고, 달래를 쫑쫑 썰어 넣어 봄 향기가 풍겨 나오게 해보렵니다. 

  이참에 오래전 인사동에서 사온 엷은 옥색 도자기 그릇에 옅은 쑥색 나물밥을 담으면 색감이 환상일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물질이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음식이란 단지 배고픔을 채우기보다는 미각, 후각, 시각까지도 충족시키는 기호품이 되기도 한 때입니다. 

  곤드레나물밥 향과 맛을 음미하며 행복해 할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뭐 대단한 건가요? 드립 커피 한 잔에 이런 꿈을 꾸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아침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사와 행복은 누구에게서 받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매사에 의미를 붙여 보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몇 번이나 더 이 찬란한 봄을 맞을지는 모르지만 봄이 오면《인연》을 꺼내듯 지인들을 만나 봄의 향연을 나누고 싶은 바람입니다.    

   기다림과 꿈이 있다면 분명 희망찬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

 

윤금숙작가.jpg

 


  1. No Image

    ‘김샜다’ -수필가 이진용-

    내 외동딸 라영이는 1982년 5월생이다. 나는 8남매, 아내는 6남매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우리는 한 명만 낳아서 잘 기르기로 이미 결혼 전에 약속한 터였다. 아내가 출산 기미가 있어 화곡동 단골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나는 퇴근 후 곧장 병원으로 갔...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2. No Image

    ‘지금, 나도 가고 너도 간다’ -수필가 이진용 -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42개국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자살 사망자의 80% 정도는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90%가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된다니 인격장애가 자살 요인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인격장...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3. No Image

    “99%, 폐암입니다” -수필가 이진용 -

    내가 60대 중반이었던 2018년 8월 중순경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었다. 직감적으로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호흡기 전문의인 주치의를 찾아가 증세를 설명하고 CT 촬영을 할 수 있게 리퍼(refer) 해 ...
    Date2024.04.03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나무는 꿈꾸네」 - 조 옥 동 문학평론가, 시인

    며칠 전 아주 아담한 시집「나무는 꿈꾸네」를 받았다. 장소현 시인의 7번째 시집으로 겉표지엔 그의 부인 김인경 사진가의 작품, 나무로 장정(裝幀)되어 무게가 실려 있다. 이 시집에는 나무에 관한 생각을 담은 시, 이야기 시 등 몇 년 전 세상 떠난 동생을...
    Date2019.06.13 ByValley_News
    Read More
  5. 가물가물 깜빡깜빡 -<소설가>김영강-

    “이혼이야 이혼-- 이번에 못 찾으면 이혼이야--. 진짜로 이혼한다고오--”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언제 외출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열쇠 없어진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 아냐? 한번 두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뭐? 열...
    Date2021.07.24 ByValley_News
    Read More
  6. 가수 나훈아의 말 말 말

    가수 나훈아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대신에 항상 자신의 공연에서 특유의 시원한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곤 한다. 나훈아는 특유의 부산 사투리와 구수한 화법,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다. 그의...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7. 간접 살인 -수필가 이진용-

    내가 60대 후반의 안씨를 알게 된 것은 Care Center (양로 병원)에서였다. 나는 천주교 레지오 봉사활동 일환으로서 그곳을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여 한국인 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기도와 함께 위문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때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8. 감동의 글 : 아버지의 생일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시간, 어느 순대국집에 한 여자 아이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남루한 행색, 퀘퀘한 냄새… 주인은 한눈에 두 사람이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차갑게 ...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감동의 글 :얼마나 추우셨어요?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감동의 글- <계란 후라이>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이야기

    우리 엄마의 눈은 한 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1. 감동의 글: 14개의 계단

    행복이 블로그 <행복 충전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는 집은 언덕 높은 곳에 있었어요. 집 앞에 14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 결국은 죽게 되고마는 희귀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12. 감동의 글: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13. No Image

    감동의 글: 어느 병원장의 이야기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까? 유난히 바쁜 어느 날, 80대의 노신사가 엄지 손가락의 봉합사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를 다그쳤다. 아직 의사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그를 돌보려면 한 시간은 족...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감동의 실화: 사람의 됨됨이

    미국이 독립을 한 얼마 후, 군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장교가 말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먼 길을 달려오느라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징검다리가 놓인 냇가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비 그친 직후여서 징검다리가 물속에 ...
    Date2022.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5. No Image

    감사 십계명 -찰스 스펄전-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영국 침례교 목사, 설교가)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감사를 외치는 행복 -2023년 새해를 맞으며 - 소설가 윤금숙 -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은 계묘(癸卯)년 검정토끼 해라 합니다. 하필 왜 검정색일까 하고 찾아보니 한자의‘계’뜻이 검정이라 해서 검정토끼로 불린다하네요. 토끼는 예부터 우리의 정서에서 가장 사랑스런 동물로 인식이 돼 있었던 것 같습니...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17. 곤드레나물밥 -윤금숙(소설가, 수필가)-

    우물쭈물하다 1월이 휘~리~릭 지나고 2월이 다가왔습니다. 계절적으로 춘삼월을 품고 있는 2월을 좋아합니다. 봄이 머지않았기에. 뒷마당 그늘진 곳에서 새빨간 동백이 소리 없이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얼음을 뚫고 피는 노란색 복수초는 숲속에서 ...
    Date2024.01.29 ByValley_News
    Read More
  18. 그 어린 눈망울 -김 영 강 수필가-

    유리창은 물론 문까지 박살이 나고 가게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와글와글 서로 부딪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바닥에 깔린 옷가지들을 밟고 또 밟으며, 걸려 있는 옷들을 끌어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다, 여...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19. No Image

    그래도 꽃은 핀다 - 윤금숙 (소설가)

    코로나19로 인해 봄이 막 시작하려는 때부터 집에 감금당했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봄을 기다리며 사는 나에게는 실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올 봄에는 우리 집 뒷마당에 가득한 봄으로만 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해마다 봄이면 너...
    Date2020.07.25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그래도 난 이웃이 있어 행복해요! -밸리 노인회 전 회장 김재봉 -

    밤은 아직 초저녁인데 어디선가 명쾌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바로 저런 웃음이 우리 이웃에 골고루 번져 나갔으면 하고… 내게도 아직은 웃음이 남아있는가? 김형석 교수는 그이 에세이집 [고독이 머무는 ...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