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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60대 중반이었던 2018년 8월 중순경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었다. 직감적으로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호흡기 전문의인 주치의를 찾아가 증세를 설명하고 CT 촬영을 할 수 있게 리퍼(refer)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어디 봅시다”하며 청진기를 여기저기 대 보고는“에잇! 암이 아닙니다”라며 의뢰서 발급을 거절하였다. 며칠 후, 주치의를 다시 찾아가 간절하게 사정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 위층에 있는 위장내과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과는 달리 의사의 허락이 있어야 CT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장 내시경을 두 번 받은 적이 있었기에 위장내과 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는 흔쾌히 의뢰서를 발급해 주어 CT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촬영 후 2일이 경과 했을 때 주치의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주치의 선생님이 만나자고 하니 빨리 오시라”는 연락을 받고 불안한 마음으로 클리닉에 갔다. 주치의는 거두절미하고“CT 촬영 결과 99%, 폐암입니다”라고 말하며“왼쪽 폐에 손바닥만한 종양이 있다”는 것이었다. CT 담당자가 내 주치의한테 결과를 통보해 준 것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를 멱살잡이하며“그런데 왜 CT 촬영을 허락해 주지 않았냐?”며 따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그는“보험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보험이 없다는 대답에 “어허! 큰일났구먼, 집 팔아먹겠네…”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인지 비아냥거리는 것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투의 말은 의사가 환자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그렇다면 폐암 몇 기 입니까?” 물어보았다.“세밀한 것은 큰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99% 폐암이라는 진단은 1%는 폐암이 아니라는 것도 성립된다. 나는 그 1%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옛말에 자신의 병은 널리 알리라고 했지 않는가?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 병세를 말하였다. 그중 한 명이 올리브뷰(Olive View)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자기도 그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는데 성공적이었고 수술 비용도 조금밖에 부담하지 않았단다.  

   올리브뷰(Olive View) 병원 응급실을 경유하여 정밀검사를 하였다. 수술을 하기 위한 절차가 차례로 진행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폐암은 아니지만 양성 종양이 너무 빨리 자라기에 빠른 시일내에 제거해야만 한다고 했다. CT 사진을 찍은 지 두 달만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집도의는 야나가와 제인이라는 일본계 여의사였다. 오전 8시경에 시작된 수술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혹이 너무 커서 꺼낼 수가 없어서 6번 갈비뼈 일부를 절단하고 제거할 수 있었단다. 중환자실에서 5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하였다. 치료비는 10회 정도의 통원 치료비를 포함하여 25만 달러가 넘게 청구되었지만 병원 자체 내 극빈자 도움센터를 활용하여 내 월수입에 맞는 보험료를 부담하고 보험에 가입한 결과 의료비를 2천 달러 정도만 지불하게 되었다.

   회복 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위장내과였다. 약소한 선물을 들고 내게 도움을 준 선생님께“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고마워했더니“의사로서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병원 측의 최종 판정은“폐암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수술 후 1년에 한 번씩 하는 CT 검사도 올해로 여섯 번째 받았는데 정상으로 판명되고 수술 부위도 아주 잘 아물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주치의가 왜 의뢰서 발급을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에서였다면 그 의사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임무를 소홀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다. 주치의가 암이 아니라는 오진으로 안심하고 있다가 시일이 지난 후 악성 암으로 발전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주치의는 환자의 건강을 위해 진찰, 검사, 진단 등의 일련의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해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99%, 폐암”이라고 오진을 한 그 의사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 나는 그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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