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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시간에게 말을 건넨다. 또 한 해 5월을 맞으며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경쾌한 행진곡 같기도 하고 어쩌면 슬픈 소야곡처럼 가슴 저미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 전 일흔 두 살의 생일을 맞아 두 딸과 그 배필, 손자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마련한 자리였다. 세상 살이에 바쁜 아이들에게 모임을 사양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반면 내 안에 울리는 또하나의 소리는 과연 일 년 후, 다음 생일의 시간이 마련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새 세상의 중심에 서서 힘차게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나는 지나온 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순간도 잊지 못해 보고싶어 했던 내 엄마를 그려내고 있었다. 생의 기원을 엄마가 아니면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으리요.

 

  지난 늦가을, 7년 만에 한국엘 다녀왔다. 40여 년의 미국 생활에서 다섯 번째의 방문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은 늘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며 외로워했다. 우리 네 자매는 모두가 미국에 정착했기에 딱히 찾아볼 가족이 없어 한국여행이 그리 잦은 편은 아니었다. 오로지 내게 시린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일찌기 돌아가신 엄마의 외로운 무덤 때문이다. 엄마는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서 그토록 소원했던 막내딸의 대학 입학식엘 참석할 수 없었다. 신입생 설렘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 그해 가을 엄마는 나를 떠났다. 54년 6개월,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사망신고서에 기록된 시간이었다. 그에 비하니 나는 얼마나 긴 삶을 자국내며 지나왔는가.

 

  엄청나게 변화된 서울의 모습이 놀라웠고 한편으론 낯선 곳에 서 있는 부담감도 있었다. 모두가 빠른 사람들의 발걸음 속 반짝이는 눈빛에 정신이 바짝 드는 듯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막연해 고심을 하던 중 몇 해 전 협회 문학 세미나에 강사로 모셨던 교수님께서 기꺼이 시간을 내 주었다. 이토록 고마울 수가. 손수 운전하며 길 안내 역할까지 또 오랫만에 주고받은 지난 이야기로 정겨운 나들이였다. 어느새 가로수의 가을 끝 남은 잎들이 바람에 날렸다. 곧 겨울이 올 것 같았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도 변했지만 산소에 다가갈수록 낯설지 않은 느낌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생의 길이만큼, 54년째 그 자리에서 나를 맞으려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 엄마…

 

  ‘가족’이라는 이름, 참으로 고귀하다. 내 어릴 적 기억 식사 때의 머릿 속 사진, 두리반이 펼쳐져 있고 아랫목 할머니의 고정좌석을 중심으로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한 끼를 나누는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그리움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어떤 환경에 선다 해도 변할 수 없고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합체다. 혈연의 관계가 아니라 해도 인생길에서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동행이리라.

 

  세상에 나온 숙제를 어느 만치 치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시대 놀랍도록 늘어난 수명으로 덜컥 긴장이 된다. 어떤 이유로든 행여 자녀에게 짐을 지워주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지킬 일이다. 가끔 상상해 본다. 내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손잡고 배웅해 줄 그 누구, 누구를…

 

  세상에 하나뿐인‘어머니’의 사랑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두 딸의 엄마인 것이 새삼 기적인 듯 느껴지는 5월의 따뜻한 아침이다.

 

필자: 김화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미주한국일보 논픽션 입상, 재미수필가문학가협회 신인상, 〈현대수필〉 신인상, 미주중앙일보 문예공모 수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퍼즐맞추기>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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