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시간이 시간에게 말을 건넨다. 또 한 해 5월을 맞으며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경쾌한 행진곡 같기도 하고 어쩌면 슬픈 소야곡처럼 가슴 저미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 전 일흔 두 살의 생일을 맞아 두 딸과 그 배필, 손자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마련한 자리였다. 세상 살이에 바쁜 아이들에게 모임을 사양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반면 내 안에 울리는 또하나의 소리는 과연 일 년 후, 다음 생일의 시간이 마련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새 세상의 중심에 서서 힘차게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나는 지나온 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순간도 잊지 못해 보고싶어 했던 내 엄마를 그려내고 있었다. 생의 기원을 엄마가 아니면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으리요.

 

  지난 늦가을, 7년 만에 한국엘 다녀왔다. 40여 년의 미국 생활에서 다섯 번째의 방문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은 늘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며 외로워했다. 우리 네 자매는 모두가 미국에 정착했기에 딱히 찾아볼 가족이 없어 한국여행이 그리 잦은 편은 아니었다. 오로지 내게 시린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일찌기 돌아가신 엄마의 외로운 무덤 때문이다. 엄마는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서 그토록 소원했던 막내딸의 대학 입학식엘 참석할 수 없었다. 신입생 설렘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 그해 가을 엄마는 나를 떠났다. 54년 6개월,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사망신고서에 기록된 시간이었다. 그에 비하니 나는 얼마나 긴 삶을 자국내며 지나왔는가.

 

  엄청나게 변화된 서울의 모습이 놀라웠고 한편으론 낯선 곳에 서 있는 부담감도 있었다. 모두가 빠른 사람들의 발걸음 속 반짝이는 눈빛에 정신이 바짝 드는 듯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막연해 고심을 하던 중 몇 해 전 협회 문학 세미나에 강사로 모셨던 교수님께서 기꺼이 시간을 내 주었다. 이토록 고마울 수가. 손수 운전하며 길 안내 역할까지 또 오랫만에 주고받은 지난 이야기로 정겨운 나들이였다. 어느새 가로수의 가을 끝 남은 잎들이 바람에 날렸다. 곧 겨울이 올 것 같았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도 변했지만 산소에 다가갈수록 낯설지 않은 느낌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생의 길이만큼, 54년째 그 자리에서 나를 맞으려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 엄마…

 

  ‘가족’이라는 이름, 참으로 고귀하다. 내 어릴 적 기억 식사 때의 머릿 속 사진, 두리반이 펼쳐져 있고 아랫목 할머니의 고정좌석을 중심으로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한 끼를 나누는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그리움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어떤 환경에 선다 해도 변할 수 없고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합체다. 혈연의 관계가 아니라 해도 인생길에서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동행이리라.

 

  세상에 나온 숙제를 어느 만치 치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시대 놀랍도록 늘어난 수명으로 덜컥 긴장이 된다. 어떤 이유로든 행여 자녀에게 짐을 지워주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지킬 일이다. 가끔 상상해 본다. 내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손잡고 배웅해 줄 그 누구, 누구를…

 

  세상에 하나뿐인‘어머니’의 사랑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두 딸의 엄마인 것이 새삼 기적인 듯 느껴지는 5월의 따뜻한 아침이다.

 

필자: 김화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미주한국일보 논픽션 입상, 재미수필가문학가협회 신인상, 〈현대수필〉 신인상, 미주중앙일보 문예공모 수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퍼즐맞추기>을 펴냈다.

 

 

 

 


  1. <이 사람의 말> 가수 양희은의 말 “그럴 수 있어!”

    긴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가수 양희은 씨가 새 에세이집 <그럴 수 있어>를 펴냈다. <그러라 그래>에 이은 책이다. 양희은 씨는 읽는 이들에게 자기 식의 편안한 말투로 진심어린 위로를 건넨다. 입에 발린 어설픈 위로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진심의 ...
    Date2023.08.31 ByValley_News
    Read More
  2. <이 사람의 말> "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가 남긴 말들

    한국의 대표적 보수 지성인 김동길 교수(1928~2022)가 지난 10월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4세. 이어령 선생, 김동길 박사 등 시대의 어른들이 떠나시니,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며, 쓸쓸해집니다. 중심을 잡아줄 어른이 아쉬운 어지러운 세상...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3. No Image

    <우산> -김수환 추기경-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4. <아름다운 사람>‘아침이슬’ 김민기 별세

    ‘아름다운 사람’김민기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리고 새벽마다‘아침이슬’이 되어 찾아온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태어나 2024년 7월21일까지 73년간 그의 삶은 늘 순수하고 아름답고 뜨거웠고, 부끄러움을 ...
    Date2024.07.31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스마트 소설> 이매진(Imagine),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소설가 곽설리 -

    눈을 뜨자 새벽하늘이 스르르 하루의 창문을 열고 있다. 새벽은 아직 어스름했고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직 아침 새들이 찾아와 수다를 떨기 전. 하얀 백지 같은 공백의 시간이었다. 공백의 시간 뒤엔 적막이 검은 벨벳 휘장처럼 깔려 있다. 아직 도시가 잠이...
    Date2023.05.31 ByValley_News
    Read More
  6. No Image

    <생각의 글> 갓을 쓰고 다니는 조선인

    옛날 선교 초기, 조선에 온 미국인 선교사가 보니 양반들은 모두 머리에 갓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한 유식한 양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 머리에 쓴 것이 무엇이요?” “갓이요.” “아니, 갓이라니! 갓(God...
    Date2021.05.25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생각의 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그리스 시라쿠라 거리에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그 동상 아래에는... *우리들 인생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답니다. -첫째는 입 밖으로 나온 말, -둘째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며, -셋째는 흘러간 세월,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
    Date2024.08.31 ByValley_News
    Read More
  8. <삶의 지혜>좋은 죽음을 위한 네 가지 준비 -정현채(서울대의대 명예교수)-

    80대 후반의 지인으로부터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죽음이 두려운데, 내색은 못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지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고령 분들이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 ...
    Date2024.01.29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삶의 지혜> 아름다운 개성(個性)

    태양(太陽)은 수천만년 뜨거운 불을 품어 내지만, 결코 조금도 식지 아니하고, 바다는 난파선(難破般)에 목숨을 잃은 인간들의 수많은 애절하고, 슬픈 사연을 모두 담고 있지만, 지금껏 묵묵히 한마디 말이 없다. 매화(梅花)는 북풍한설(北風寒雪) 매서운 추...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10. <삶의 지혜> 셰익스피어 9가지 명언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
    Date2024.05.01 ByValley_News
    Read More
  11. <삶의 지혜> 말의 인문학

    퍼온 글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꾸는 격려와 위로의 힘이 되기도 하고,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로 멀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주일 날, 교회를 잘 다니던 한 부부가 교회 가기 전에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교회에 갈 기분이 안 난다고 골프채를 들...
    Date2023.08.31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삶의 지혜> 마음꽃 가나다라

    마음꽃 가나다라 평생 만나고픈 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행복’입니다. 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아름다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즐거움’입니다. 라일...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13. <삶의 글>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시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잘 늙기’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활기차고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는 이들에게 할머니 시인으로 유명했던 시바타(柴田) 도요(1911-2013)의 시는 큰 자극과 용기가 된다. 시바타 도요는 주방장이었던 남편과 사별 후 아...
    Date2024.07.01 ByValley_News
    Read More
  14. <사진과 시> 고구마 두 마리

    고구마 두 마리 사진: 이상모 (그래픽 디자이너) 시: 장소현 (시인, 극작가) 고구마 두 마리 정답게 정답게 무슨 노래 부르시나? 아리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 스리랑 두런두런 소근소근 무슨 이야기 나누시나? 고구마 두 마리 아리 스리 아리 아리 어디로 가시...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15. <밸리문인 글마당>풀지 않는 숙제 -국화 리-

    -'철조망 바이러스’를 읽고- 바이러스가 지구를 휩쓰는 위력을 간파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장소현 작가는 2021년에 <철조망 바이러스>라는 작품으로 특종 바이러스를 소개했습니다. 본적이 ...
    Date2024.06.04 ByValley_News
    Read More
  16. <밸리문인 글마당> 마음의 행로 -수필가 김화진-

    시간이 시간에게 말을 건넨다. 또 한 해 5월을 맞으며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경쾌한 행진곡 같기도 하고 어쩌면 슬픈 소야곡처럼 가슴 저미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 전 일흔 두 살의 생일을 맞아 두 딸과 그 배필, 손자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마련한...
    Date2024.05.01 ByValley_News
    Read More
  17. <믿음의 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잔혹한 전쟁이 그치지 않는 이 지구별 인간 세상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막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슬프다. 그래도 기도는 할 수 있다. 우리의 사랑과 더운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하늘에 이르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프란시스코 성인의 <...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18. <독자 글마당>뜬 구름 잡기 -수필가 이진용-

    얼마전에 운전 중 세븐 일레븐 앞에 줄을 길게 선 무리를 보았다. 당첨금이 10억 달러가 넘는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당첨만 된다면 대대손손 부자로 살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니 만사를 제쳐두고 구입하려는 열기로 미국 ...
    Date2024.07.01 ByValley_News
    Read More
  19. No Image

    <독일군의 선물> 원작과 오마주 -소설가 박휘원 -

    <편집자의 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져 있는 <독일군의 선물>에 대한 미주 소설가 박휘원 씨의 오마주 작품을 소개한다. 원작과 비교해서 읽기를 바란다. 독일군의 선물-허버트 릴리호의 ‘ 독일군의 선물’에 대한 오마주 박휘원 (소설...
    Date2022.06.30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다시읽는 감동의 글> 어느 병원장의 간증

    유난히 바쁜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보통날보다 일찍 출근을 했는데, 80대의 노인이 엄지손가락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환자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9시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면서 상처를 치료해 달라며, 병원장인 나를 다그쳤습...
    Date2021.05.25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